“더는 시간이 없다”…장관 내정해 압박
정부조직 개편을 둘러싼 신구 권력의 대치와 관련해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측과 한나라당은 막판 타결을 위해 협상을 적극 시도하면서도 대통합민주신당이 타협을 거부할 수 없는 지점으로 상황을 몰고 가기 위한 압박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새 정부가 출범도 하기 전에 정부조직 구성이라는 핵심의제에서 밀리면 향후 정국주도권 확보가 어렵다는 현실론과 함께 정치적 명분과 국민 여론에서도 우위에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김형오 대통령직인수위 부위원장은 14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인수위에서 열린 간사단회의에서 “이제 늦을 대로 늦었다. 더 늦출 수도, 미룰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못박았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도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통합민주신당 요구대로 하면 16부가 된다”며 “결국은 노무현 정권으로의 회귀다. 이런 수구적 행태와 타협하는 것은 국민이 용납지 않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또 정몽준 최고위원은 “(대통합민주신당이)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고 해 놓고도 실제로는 타협을 하지 않고 있다”며 “이것은 국민을 우습게 여기고 있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 당선인 측의 압박전술은 이날 농촌진흥청 및 양성평등위원회와 관련한 인수위의 정책 변화에서도 드러났다.
인수위는 정부출연기관으로 전환될 농진청의 연구개발(R&D) 예산을 대폭 늘리고 보건복지여성부에 설치될 양성평등위를 장관급 기구로 격상할 뜻을 내비쳤다. 정부조직법 개편안의 원안을 고수하되 농업이나 여성계에 대한 추가 배려를 통해 대통합민주신당 측의 공세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정부조직 개편안이 타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부처별 장관을 내정한 것도 대통합민주신당을 밀어붙이기 위한 방책으로 풀이된다.
이 같은 ‘공세 모드’는 12일 이 당선인과 손학규 대통합민주신당 대표의 통화에서부터 감지됐다.
이 당선인은 이날 손 대표에게 “대화로써 협의가 안 되면 우리는 원안을 갖고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적어도 정부조직과 관련해서는 양보할 여지가 많지 않음을 분명히 한 셈이다.
이날 통화가 오히려 협상을 꼬이게 했다는 분석도 있지만, 이 당선인 측은 명분에서 앞서고 있어 강경론으로 압박해도 잃을 게 많지 않다는 판단이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 맞받아친 신당
“언론플레이 말고 진지하게 나서라”
대통합민주신당이 정부조직 개편안 협상 과정에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향해 “언론플레이를 중단하라”며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인수위가 진지한 협상 대신 언론플레이를 통해 대통합민주신당을 압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통합민주신당 최재성 원내대변인은 14일 “앞으로 언론을 통해 우회적인 통로로 들어오는 인수위의 제안에 대해서는 일절 대응하지 않기로 했다”며 “인수위의 정치적 의도에 말려들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통합민주신당은 인수위와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측이 사전 상의 없이 ‘대통합민주신당 손학규 대표와 회동할 계획’이라고 발표한 것은 숨은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본다.
이 당선인이 손 대표를 만나 협의하는 모양새를 보여주며 명분을 쌓은 뒤 협상 결렬을 선언하고 ‘야당의 발목 잡기’라며 정치 공세에 나서기 위한 수순 밟기 차원이라는 것이다.
앞서 13일 이 당선인 측이 “정부조직 개편안과 관련해 직접 협의를 하자”고 손 대표에게 만날 것을 제안했을 때 대통합민주신당이 “실무적 협의를 진전시킨 후 만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떨떠름한 반응을 보인 것 역시 이와 무관치 않다.
우상호 대변인은 13일 “손 대표가 내일(14일) 대구를 방문하고, 모레(15일) 충북을 방문하는 계획을 뻔히 알면서도 내일 면담을 요청하겠다는 식으로 언론에 흘리는 것은, 손 대표가 이 당선인과의 면담을 피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위한 진지하지 못한 정치공세”라며 “이제 이런 정치장난은 그만두라”고 날을 세웠다.
손 대표가 직접 이 당선인을 겨냥하기도 했다. 손 대표는 12일 “이 당선인이 ‘전화로 할 게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선정해 깊이 있는 협의를 하자’고 해놓고 대변인을 통해 ‘전화로 설득했다’고 발표한 것은 일방적인 언론플레이”라며 “진정성이 전혀 없는 대중영합주의에 지나지 않는다”고 반발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14일 “우리가 의도적으로 언론플레이를 한 적은 한 번도 없다”며 “계획이 언론을 통해 미리 보도되는 바람에 약간의 오해가 생겼을 수는 있지만 손 대표를 직접 만나 협상을 타결하려는 우리의 진의를 의도적으로 왜곡하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