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盧단독명의’ 제작 드러나
지난해 10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 때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에 기념식수를 하고 설치한 표지석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표지석을 설치하기 위해 대통령 선거 전날 방북한 김만복 전 국가정보원장이 ‘북풍(北風)’ 의혹을 해명한다는 명분으로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장과의 대화록을 언론에 유출했다 옷을 벗더니 이번에는 표지석과 관련한 청와대의 해명이 사실과 다른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사건 전말=남북 정상회담 마지막 날인 지난해 10월 4일. 노 대통령은 평양 중앙식물원에서 정상회담을 기념하는 소나무 1그루를 심었다.
당초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공동식수를 할 계획이었지만 행사 직전 참석자가 김 위원장 대신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으로 바뀌었다.
이후 대선 전날인 지난해 12월 18일 김 전 원장은 노 대통령의 식수를 기념하기 위한 표지석을 설치하러 비밀리에 방북했다. 김 전 원장이 설치한 표지석은 70kg짜리다.
한 언론이 14일 정부가 남북 정상회담 당시 소나무 앞에 세울 250kg짜리 대형 표지석을 만들어 갖고 갔는데 북한이 크기 등을 문제 삼아 ‘퇴짜’를 놔 되가져왔다고 보도하면서 표지석 논란이 점화됐다.
▽달라진 청와대 해명=천호선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 겸 청와대 대변인은 14일 정례 브리핑에서 “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공동 식수에 대비해 두 정상의 이름이 새겨진 표지석을 준비해 갔지만 이뤄지지 않아 그냥 갖고 돌아온 것뿐”이라고 어이없어 했다.
당초 북측은 ‘표지석을 설치하지 않는 것이 관례’라고 난색을 표했다가 남측의 설득이 계속되자 ‘설치 여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일단 갖고 와 보라’고 했다는 것. 그러나 두 정상의 기념식수 자체가 불발되면서 준비해 간 표지석을 설치하지 못했다는 게 천 수석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최초 제작된 대형 표지석에도 노 대통령의 이름만 새겨져 있었던 것으로 15일 확인됐다. 천 수석은 “사실관계를 잘못 파악한 착각이자 실수”라고 사과했다. 그러면서 “남북 정상회담 개최 직전인 지난해 9월 30일 최종적으로 북측이 ‘통상 표지석에 김정일 위원장의 이름을 넣지 않는 것이 관행이기 때문에 양 정상이 기념식수를 하더라도 노 대통령의 이름만 넣어 표지석을 준비하자’고 해 왔다”고 다시 해명했다.
“처음 제작한 대형 표지석은 대통령의전비서관실이, 나중에 제작한 표지석은 국정원이 각각 담당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고도 했다.
▽왜 작게 다시 만들었을까=결과적으로 1차 표지석과 2차 표지석은 규모만 달라졌다. 문구는 ‘2007년 10월 평양’에서 ‘2007. 10. 2∼4 평양 방문 기념’으로 ‘평양 방문 기념’이란 것만 추가됐다. 따라서 왜 규모를 줄인 새 표지석을 만들었느냐는 의문이 남는다.
천 수석은 15일 “기념식수 장소를 지난해 10월 2일 밤에서야 알게 됐는데 현장에 가보니 우리가 준비한 표지석이 주변 경관과 조화가 되지 않고 우리 측과 북측 모두 ‘좀 크지 않으냐’고 해 표지석은 추후 협의하기로 한 것”이라며 “이후 국정원이 북한 통일전선부와 협의해 규모를 줄였다”고 했다. 전날과 완전히 다른 설명이었다.
소형 표지석을 설치하기 위해 굳이 김 전 원장이 직접 평양에 간 것도 의문점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김 전 원장의 평양행은 김 전 원장의 자체 판단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김 전 원장이 평양에 영구히 이름을 남기기를 원하는 노 대통령과 청와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대선 하루 전날 방북하는 ‘과잉 충성’을 보였다는 추론이 가능하지만, 그것만 갖고는 납득이 어려워 여전히 의혹이 남는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