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교체기 틈타 자리보전 로비 등 기강해이 위험수위
비리 연루 - 정책실패 책임있는 간부들 문책 이어질 듯
국내파트 대폭 축소… 자원외교 - 강대국 정보활동 강화
노무현 정부에서 국가정보원의 요직을 두루 거쳤던 모 차관급 간부는 지난해 대선 이후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측과 친한 대학 동문들을 통해 자리 보전 로비를 하고 다닌다는 소문이 파다해 직원들의 빈축을 사고 있다.
도별 책임을 맡고 있는 몇몇 지방 지부장은 대선 이후 업무는 뒤로 하고 해당 지역 출신 국회의원 및 유지들을 동원해 자리 구명 로비를 활발하게 벌여 새 정부 관계자들을 당황스럽게 하고 있다.
국정원은 최근 점심 식사 후 원내로 차를 운전해 들어오는 직원들에게 자체 음주 단속을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만복 전 원장 사태로 무너진 기강을 확립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대낮 음주’가 많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등이 새 정부 출범은 물론 신임 원장 및 차장 발표도 하기 전에 국정원 개혁방안을 마련한 것은 최근 나타나고 있는 ‘위험한 조짐’들 때문이다. 정권 교체기를 틈탄 국가 정보기관의 기강 해이를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새 정부는 특히 국정원의 문제점으로 지적돼 온 ‘통일부 따라하기’ ‘외교관 흉내 내기’ ‘지방 기관장 행세’ 관행을 타파하고 인적 쇄신을 단행할 예정이다.
▽조직 슬림화 및 인사 투명화=국정원의 현행 3차장 제도를 2차장 제도로 줄이기로 한 것은 우선 전 정부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는 조직 슬림화 방침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차장급인 기획조정실장직은 그대로 유지된다.
1급 이상 간부 31명 전원에 대한 용퇴론이 나오는 가운데 고질적인 인사 로비 근절 방안도 추진된다. 개혁방안은 국정원 직원들이 재직 기간에 따라 동일한 보수를 받는 단일호봉제를 도입하는 한편 탁월한 성과에 대해서는 인센티브를 강화하도록 했다.
그동안 1급 이상 간부들은 물론 지방 파견 인력의 경우 인사철마다 중앙 및 지방 출신 국회의원 등에 대한 인사 청탁이 거의 관행처럼 굳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단일호봉제가 실시되면 국정원 직원들은 현재의 교사들처럼 승진 누락에 따른 경제적 손실에 대한 불안감을 덜고 정치권에 줄을 대는 대신 정보 수집과 분석이라는 전문 영역에 전념할 수 있다는 것이 인수위의 구상이다.
새 정부 고위직에 내정된 한 인사는 “지금까지 국정원 직원들은 정보라는 눈에 안 보이는 결과물을 생산하는 업무의 특성상 경쟁과 효율성이라는 시장원리와 거리가 멀었으며 따라서 인사 때마다 정치권 로비를 통한 인사경쟁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국익을 위한 현장 정보수집 강화=지난달 한나라당 이재오 의원이 러시아에 당선인 특사로 갔을 때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그의 후계자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통합러시아당 대선 후보) 제1부총리를 만나지 못한 것은 국정원의 책임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푸틴 대통령이 과거 국가안보위원회(KGB) 출신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국정원이 평소 그에 대한 관리를 잘했더라면 특사단 면담이 가능했을 것이라는 해석 때문이다.
새 정부 고위직 내정자는 “국정원 해외 파트는 외신 베끼기 등의 오명을 받아 왔다”며 “이제는 안일한 근무 태도를 탈피해 외교부에서 나간 공식 외교관들이 할 수 없는 힘들고 궂은 일에서 성과를 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전 정부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는 해외 자원외교를 위한 정보 지원이나 공식 라인이 아닌 비공식 채널을 활용한 대인 첩보 수집에 무게를 실어줄 것으로 전망된다. 한 해외정보 전문가는 “부족한 자원을 어떻게 획득하는지가 국가 경쟁력 강화에 관건이 된 시대에 국정원의 역할을 제대로 짚은 것 같다”고 평가했다.
선택과 집중의 원칙에 따라서 국익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나라의 주재원은 줄어들고 미국과 중국 등 우리 국익에 직결되는 강대국 상대 정보활동이 강화된다. 해외 교포사회에 대한 개입 활동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국내 정보 조직 슬림화=2차장 산하 국내 파트는 이번 개혁에 따라 조직과 인력, 기능이 가장 크게 줄어드는 부분이다. 이에 따라 과거 정치 개입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정치 부문을 대폭 줄이고 경찰 정보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를 받은 국내 정보활동도 축소된다.
그러나 지역 이기주의 등 사회 갈등에 대한 조정 기능은 그대로 유지하고 산업스파이 검거 등 국가 이익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인력을 재배치할 방침이다.
그 신호탄은 첫 인사에서 지방 조정관 자리의 대폭적인 감소와 문책성 인사로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 새 정부 관계자들은 일부 지방 조정관이 지역의 유지 행세를 하며 지역 토호 및 정치인들과 결탁해 자리 보전을 해 왔다고 보고 있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