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은씨 돈관리인 철저 수사… 전화 위치추적도
김경준씨 목적은 美서 몰수당한 재산 되찾는 것
美수감동료에게 “이면계약서 봤다고 하라” 부탁
“진실은 외면한 채 자신이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특별검사 무용(無用)론을 주장한다면 스스로 정의로운지 한 번 생각해 보라.”
최철 특검보는 21일 일부 정치권에서 특검 결과가 작년 검찰 수사 때와 비슷하다며 ‘특검 무용론’이 거론되자 이같이 반박했다.
정호영 특검도 이날 “수사 결론이 어차피 특검법을 발의한 측이나 반대한 측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는 노릇이라 ‘왜 이분을 조사하지 않았나’ 하는 것이 없도록 수사했다”며 수사의 공정성을 거듭 강조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나온 특검팀은 모두 “이번 수사에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2시간 넘게 계속된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도 막힘이 없었다. 특검팀과의 일문일답.
―이명박 당선인에 대한 3시간 조사가 충분했다고 생각하나.
“보통 수사였으면 이번 사건은 이 당선인을 조사하지 않고도 결론을 낼 수 있었다. 그러나 광운대 동영상 등과 관련해 직접 들어야 한다고 판단해 방문 조사했다. 방법과 일시는 당선인 측이 결정했다. 원래 오후 3시로 예정됐는데 당선인 일정 때문에 저녁으로 늦어졌다. 당선인이 점심도 걸렀다고 해서 가장 간단한 메뉴인 꼬리곰탕을 시켰다. 미리 조사를 많이 해 놓았기 때문에 조사 시간은 충분했다.”
―이 당선인이 광운대 동영상에 대해서 어떻게 해명했나.
“이 당선인은 ‘김경준과 BBK를 홍보해 주기 위해서 그렇게 말한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도곡동 땅이 이상은 씨 소유라는 근거가 확실한가.
“이상은, 김재정 씨 조사도 이뤄졌고 자금 관리인들도 수차례 수사했다. 이들에 대한 휴대전화 위치추적까지 했다. 땅 매입 당시(1985년) 이상은 씨가 상당한 재력이 있었다는 각종 자료도 새로 받았다. 매월 이 씨의 통장에서 인출된 1000만∼3000만 원은 이 당선인에게 흘러간 것이 아니었다. 이상은 씨가 ㈜다스 회장으로 접대비나 문중 사업비 등으로 쓴 것으로 파악했다.”
―김 씨와 미국 로스앤젤레스 구치소에서 함께 수감생활을 한 신모 씨는 특검 조사에서 김 씨의 귀국 경위를 설명했나.
“김 씨가 한국에 돌아가 이명박 대선 후보를 낙선시키겠다며 신 씨에게 (위조된) 이면계약서를 봤다고 해 달라고 부탁했다. 신 씨는 당시 김 씨가 정치적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구체적으로 지칭하지는 않았다.”
―김 씨가 만든 이면계약서를 본 신 씨의 소감은….
“신 씨가 두 차례 김 씨의 이면계약서를 봤는데 볼 때마다 내용이 달라져 있었다고 했다. 한 번은 도장과 사인이 같이 돼 있었고 다음번엔 도장만 찍혀 있었다고 진술했다. 또 ‘계약불이행’을 ‘계약불이항’이라고 쓰는 등 오타도 많아서 고쳐 줬다고 말했다. 김 씨가 한글 쓰기에 익숙지 않아서 그런 것으로 판단된다.”
―김 씨가 먼저 형량을 협상한 부분을 확인했나.
“어느 측이 먼저 얘기했는지 불명확하지만 수사 녹취 자료를 보면 수사 검사가 ‘어제 너(김경준) 나(수사 검사)한테 장사꾼이니깐 페이버(혜택) 주면 위조 사실 인정하겠다고 말한 적 있지’라고 하니 김 씨가 ‘그렇다’고 인정한 부분이 나온다.”
―김 씨는 왜 이런 일을 했다고 보나.
“김 씨는 미국 재판을 통해 몰수당한 재산을 지키는 게 목적이다. 김 씨는 그 재산을 본인이 번 것이라고 했지만 자금 추적 결과 옵셔널벤처스의 법인자금을 횡령하고 387억 원의 유상증자 시 발행된 주식을 내다팔아 생긴 돈으로 확인했다.”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
▼신당, 국회 몸싸움끝 대선 이틀전 통과
한나라 위헌소송… 헌재 “일부만 위헌”
에리카김 美서 ‘김경준 불법행위’ 시인… 수사 급물살▼
■ 곡절 많았던 ‘BBK 특검’
이른바 ‘BBK 특검’은 검찰이 지난해 11월 귀국한 ‘BBK 주가조작 사건’의 주범 김경준 씨를 수사한 뒤 12월 5일 ‘이명박 대선 후보는 이 사건과 무관하다’는 결과를 내놓으면서 추진되기 시작했다.
당시 대선 패배가 확실시되던 대통합민주신당이 수사 결과에 강력히 반발하면서 국회에서 특검법을 발의했다.
한나라당은 상임위 참석을 거부하며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막기 위해 본회의장 의장석 주변을 점거하는 등 배수진을 쳤다. 하지만 수적 우세에 있던 신당 의원들은 물리력을 동원해 의장석을 재점거했고 이 과정에서 여야 의원들이 주먹을 휘둘러 일부 의원이 부상하는 등 심각한 폭력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12월 16일 이 후보가 “BBK는 내가 설립했다”고 한 ‘광운대 강연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의혹이 증폭되자 결국 이 후보는 ‘특검법 수용’이라는 결단을 내렸고 그달 17일 본회의에서 국회의장 직권상정으로 특검법이 통과됐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용훈 대법원장의 추천을 받아 1월 7일 정호영 전 서울고등법원장을 BBK 특검법 특별검사로 임명했다.
한나라당은 특검법이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에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했지만 헌재는 1월 10일 동행명령제에 대해서만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1월 15일 ‘정호영 특검팀’이 공식 출범했다. 특검팀은 특검보 5명과 파견검사 10명 등 수사 인원만 100명이 넘는 사상 최대 규모로 꾸려졌다.
특검팀은 검찰로부터 자료를 넘겨받은 뒤 곧바로 서울 마포구 상암동 DMC 특혜분양 의혹, BBK 주가조작 사건, 강남구 도곡동 땅 실제 주인 의혹 등에 대해 수사했다.
특검 수사의 최대 반전은 미국에서 일어났다. 그동안 관련 의혹 일체를 부인하던 김경준 씨의 누나 에리카 김 씨가 미국 법정에서 “김경준 씨의 불법행위를 도와 준 사실을 덮어 주면 검찰에 협조하겠다”며 미국 검찰과 플리바기닝(Plea bargaining·형량 협상)한 사실이 2월 13일 확인된 것이다.
이후 특검팀은 17일 서울 삼청각에서 이 당선인을 3시간 동안 조사한 뒤 21일 최종 결과를 발표했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