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박함에 지친 국민 위로해야
새 정부가 출범하는 시점에 바로 새 내각이 구성되면 좋겠지만, 내각이 반드시 한 번에 구성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도 적합한 사람을 고르면서 한 달 이상 천천히 구성하는 경우도 흔하다.
대통령의 각료 내정자와 보좌진이 워크숍을 하면서 미리 호흡을 맞추고 나랏일을 적극 준비하는 것은 열심히 일하자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어서 일단은 좋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국정운영에 들어가면 대통령과 내각은 소리 없이 차분히 운영하는 게 지난 10년간 ‘개혁’이라는 말에 신물 나고 피로에 지친 국민을 안정시키는 데 더 필요하다고 본다. 지난 10년간 요란하고 시끄러웠지만 결국 국민은 나라를 잘못 끌고 간 것으로 심판했다.
새 정부에 국민이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말하면, 좀 더 성숙된 나라를 만들어 대한민국을 선진국이 되게 해 달라는 것이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확실히 하고, 실력 있는 사람들을 기용해 차분하면서도 능률적으로 일해 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지난 시절의 천박하고 저질적인 정치모습을 걷어치우고 격조 높은 나라를 만들어 국민이 대한민국에 사는 것을 자랑스럽게 느끼게 해달라는 것이다. 경제는 국민이 먹고 사는 문제이기 때문에 회생시켜야 하지만, 그러는 가운데도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삶의 격조이고 나라의 격조이다. 선진국이 되려면 국민의 삶이 격조가 있어야 하고, 나랏일을 하는 사람들의 언행이 격조가 있어야 한다. 물질적인 것으로만 치닫는 현대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이런 정신적인 가치, 품위를 유지하면 그 약점을 치유할 수 있다.
일을 하다 보면, 실무자들은 자기 확신에 빠지거나 책임을 면하기 위해 밀어붙이기로 나아가는데, 밀어붙이기로 성공하는 사례는 매우 적다. 오늘날 입헌민주국가에서 국민의 정부가 아닌 것이 없고 참여정부가 아닌 것이 없기 때문에 이름만 그렇게 걸고 실제에서는 독재적 발상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정당성을 얻기 어렵다. 나라의 일은 항상 공론화하고 국민이 논의에 참여해 합리적인 방안을 찾아내는 것이 필요하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참모는 자기 머리로 무엇을 만들어 내려고 할 것이 아니라, 전문가들의 지식과 역사의 경험을 융합해 그 속에서 일이 성공할 수 있는 방향을 찾아내 대통령이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그래서 참모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여유를 가져야 한다.
대통령은 일의 배분-조정자 역할
정부의 실행업무는 행정 각부가 하는데, 대통령제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대통령 1인이 중심이 돼 정부 일을 직접 처리하는 것은 지양하는 게 바람직하다. 대통령학의 대체적인 결론에 따르면 대통령에게는 임기라는 시간상의 한계, 국정운영에 동원할 수 있는 인적·물적 자원의 한계, 나라를 둘러싸고 있는 국제환경적 한계, 대통령 개인의 한계 등이 있다. 이 때문에 이 한계를 정확히 인식하고,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업무의 합당한 배분과 일의 선후 및 장단기 과제를 구별하여 추진하는 것이 성공적인 대통령의 관건이라고 했다. 따라서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의 업무 이외에는 내각에 일을 적절하게 배분하고 이를 조정하고 독려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제는 차분하게 새 정부를 출범시킬 때라고 본다.
정종섭 서울대 교수·법학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