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우 칼럼]‘원, 세상에!’

첫 단추를 잘못 끼우자 밑의 단추들이 후드득, 떨어져 나간 꼴이다. ‘첫 단추’란 단순히 인사 실패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인사 실패는 검증 과정을 통해 바로잡을 수 있다.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완벽한 인사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이른바 좌파에서 우파로 10년 만의 권력이동이 그렇듯 매끄럽게 진행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문제의 본질은 인사 실패가 보수우파 정권의 품격(品格)과 직결된다는 데 있다.

‘성장과 통합’ 이루려면

이명박 대통령의 첫 인사에 대한 민심의 반향은 ‘원, 세상에!’다. 아무리 경제만 살리면 된다지만 ‘고소영’에 ‘강부자’는 너무 심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더구나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해” 절대농지를 샀다는 식의 분별없는 변명까지 듣고서는 기가 막혀 할 말을 잃었다는 것이다. ‘국민을 섬기는 정부’를 모토로 내세운 새 대통령이 어쩌다가 국민을 섬기는 것과는 거리가 먼 첫 작품을 내놓게 된 것일까.

첫째, 실용에 대한 말과 실천의 간극(間隙)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이념의 시대를 넘어 실용의 시대로 나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그는 아직 좁은 보수우파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싶다. 자신과 인연이 있는 사람, 또는 잘 아는 사람의 범주를 넘어서지 못한 듯하다. 물론 보수 정권에서 보수적 인사를 중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실용정부라고 하지만 그 토대가 되는 것은 이념적(보수적) 가치이다. 그러나 ‘이념의 시대’를 넘어 ‘실용의 시대’를 구현하고자 한다면 합리적 진보와 좌파까지 포용할 수 있는 ‘열린 보수’가 되어야 한다.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주요 요인 중 하나는 그가 양극화 해소와 같은 진보적 가치를 개혁적 보수의 이미지로 흡수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노무현 정권에 실망한 국민이 대거 보수로 돌아섰다고는 하나 그들이 진보적 가치마저 몽땅 버린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 대통령이 좁은 보수우파의 틀에 매몰된다면 그의 지지 기반도 점차 좁아질 것이다.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실천의 방식을 실용이라고 한다면, 이 대통령은 용인(用人)의 폭을 더 넓힐 수 있어야 한다. 좁은 인재(人材) 풀에서는 실용할 수 있는 인재도 적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둘째, 지나친 자신감이다. 이 대통령이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책임감에 투철하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열정이 대단하다는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열정과 책임감이 과도한 자신감으로 이어져 ‘내가 내 사람들 데리고 열심히 일해 성과를 내면 됐지 무슨 말들이 그리 많은가. 안타깝다’라고 해서는 그가 말하는 신(新)발전체제는 숱한 장애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박정희의 발전체제가 반대의 논리를 배제한 성장 제일주의였다면, 이명박의 신발전체제는 경제성장과 국민통합을 지향한다. 그러나 성장과 통합은 서로 모순되는 딜레마를 수반한다. 어려움을 극복하자면 국민의 신뢰를 얻는 길밖에 없다.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는 2등 후보에게 530만 표가 넘는 차로 압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냉정하게 분석하면 그에 대한 적극적 지지율은 총유권자의 30% 남짓한 수준이다. 상대에 대해서는 압승을 했지만 국민 전체의 압도적 지지를 받은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자신감을 갖고 국정을 운영하는 것은 좋지만 언제든 등을 돌릴 수 있는 ‘다수’를 생각하고 조심해야 한다. 첫 인사도 지나친 자신감으로 국민 정서에 대한 세심한 고려를 하지 않았다가 실패한 것이 아닌가.

‘누림 드림 나눔’

이 대통령은 소망교회 장로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부(富)란 ‘누림과 드림, 나눔’의 대상이다. ‘누림’은 열심히 일해 많이 벌고 즐겁게 누리는 것을 뜻한다. 다만 분수에 넘게 사치하거나 주위 사람에게 위화감을 주는 것은 금해야 한다. ‘드림’은 신앙으로 만물의 주인인 하나님께 재물을 드리는 것이며, ‘나눔’은 이웃의 어려움을 보고 함께 나누는 것을 말한다. 이런 ‘부자 내각’이라면 누가 뭐라 하겠는가.

이 대통령은 이제 한 숨을 쉬고 국정의 큰 그림을 조율해야 한다. 조급해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다시 국민이 ‘원, 세상에!’, 탄식(歎息)하게 해선 안 된다.

전진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