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D-30]‘3金’ 지우는 4·9 총선… 그림자까지 사라진다

  • 입력 2008년 3월 10일 02시 59분


이번 제18대 총선을 계기로 ‘3김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있다.

김영삼(YS)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김종필(JP) 전 자민련 총재가 정치권 실력자로 등장한 1960년대 이후 40여 년 만의 일이다. 공(功)도 많고 과(過)도 많지만 3김 시대의 종언은 민주와 반(反)민주라는 한국 정치의 오랜 구도의 종결과 함께 한국 정치의 근본 성격을 바꿀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 흔적마저 사라지는 3김 세력

수십 년 동안 한국 정치를 주물러 온 3김 씨의 ‘현역 은퇴’는 2004년 17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출마했던 JP가 10선 의원 등정에 실패한 직후 정계 은퇴를 선언하면서 완결됐다.

하지만 이들의 무대 뒤 정치 행보는 여느 현역 정치인 못지않게 활발했고 정치권에 미치는 영향력과 정치적 무게 또한 상당했다. YS는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고, 호남에 영향력을 갖고 있는 DJ는 통합민주당의 주요 현안에 대해 수시로 수렴청정 식의 발언을 했다.

정치 현장에서는 YS와 DJ의 아들들과 직계 정치인들이 최근까지도 활동하면서 3김의 심중(心中)을 반영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는 통로로 기능했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는 이들의 흔적이 거의 남김없이 지워지고 있다.

아버지의 후광을 업고 고향에서 각각 출마하려던 YS와 DJ의 차남들(현철, 홍업 씨)은 ‘개혁 공천’이라는 칼날에 밀려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의 공천 심사 테이블에 이름조차 올리지 못했다. YS와 DJ를 가까이서 보좌했던 핵심 측근들 또한 양당의 공천 과정에서 거의 탈락했다.

JP가 충청권을 기반으로 창당했던 자민련은 간판을 내린 지 오래다.

이번 총선에서는 JP와 자민련의 빈자리를 이회창 총재가 이끄는 자유선진당이 차지하겠다고 나선 상황이다. JP의 일부 측근은 한나라당이나 자유선진당으로 뿔뿔이 흩어져 공천 신청을 했지만 전망이 밝지 않다.

과거에는 ‘훈장’처럼 여겨졌던 ‘3김 측근’이란 말이 이제는 구태 정치의 표본처럼 비치는 데다 여야 각 정당의 공천에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물 중에 3김 씨의 뜻을 대변할 만한 사람이 없는 것도 이들이 공천 과정에서 거의 몰락하다시피 하는 요인이다.

○보스 중심 정치에서 실용으로 이동

3김 정치의 종언은 한국 정치가 보스 중심의 지역 대결 구도에서 실용으로 패러다임이 이동하는 전환점이 될 것이란 분석이 많다. 대선에서 이미 징조가 나타났던 정치권의 ‘실용’ 대결은 이번 총선을 거치면서 더욱 뚜렷한 대세로 자리 잡을 것으로 보인다.

영남과 호남의 지역 대결구도가 한국 정치의 주요 판짜기 기준으로 여전히 작용하고 충청권이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하고는 있지만 3김에 필적할 만한 지역 맹주는 사라졌다.

YS와 DJ의 정치세력을 상징하는 말이었던 ‘상도동’과 ‘동교동’이라는 말도 4·9총선 이후에는 현역 정치무대에서 종적을 감출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다만 동교동계의 경우 DJ의 차남인 김홍업 의원과 박지원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무소속으로 출마해 명맥을 유지하려 할 가능성은 남아 있지만 이들이 원내 진출에 성공하더라도 의미 있는 정치세력을 형성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자유선진당 간판으로 서울 양천갑에 출마할 것으로 보이는 강삼재 전 의원은 한때 ‘YS의 양아들’로 불리기도 했지만 그는 이미 상도동계의 옷을 벗고 이회창 총재의 그늘로 들어갔다.

반세기 가까이 한국 정치를 분할 점거해 온 이들 세력이 이처럼 사라지게 된 것은 3김 씨가 자신의 정치철학이나 조직을 계승할 후진을 키우기보다는 ‘그때 그 사람들’만으로 ‘끼리끼리’ 뭉치는 행태를 반복해 온 정치 스타일에서 이미 예고됐다고 할 수 있다.

철옹성 같은 지역 기반을 바탕으로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해 온 3김 시대의 흔적이 정치무대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되면 특정 지역 또는 3김 씨와의 친소 관계에 따라 이뤄져 오던 정치권 리크루트 양상도 크게 변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선거학회장인 이남영 세종대 행정대학원장은 “3김 시대가 끝나면 시대 변화에 부응할 수 있는 정치 신인들이 다양한 경로를 통해 그때그때 정치권에 수혈되는 유연성 있는 정치 충원 방식이 자리 잡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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