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농축우라늄 신고는 비공식적 처리
③ 미국의 ‘확신’과 북한의 ‘부인’ 병기
미국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북한의 핵 프로그램 신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3가지 시나리오가 떠돌고 있다. 지난해 말까지 끝났어야 하는 북한 핵 프로그램의 완전한 신고를 둘러싼 북-미 간의 가파른 시각차를 해소하기 위한 일종의 창조적 해법들이다.
물론 이들 시나리오는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를 중심으로 한 대북협상팀에서 흘러나온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그동안 “자전거가 넘어지지 않으려면 계속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해 온 대북 협상파가 띄운 애드벌룬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3가지 시나리오=첫 번째 시나리오는 신고 대상인 플루토늄과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핵 확산 문제를 각각 분리해 별도의 문제로 다루자는 것. 북한이 사실 자체를 부인하는 UEP와 시리아로의 핵 확산 문제를 플루토늄 문제와 분리함으로써 일단 답보상태에 빠진 6자회담의 돌파구를 마련하자는 일종의 ‘실용주의’적 접근이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북한의 UEP 관련 신고를 비공개리에 받는 방안이다. 공식 제출하는 ‘신고서’에는 UEP 문제를 빼 북한의 체면을 살려주되 북-미 양자만 앉은 자리에서 UEP의 실체를 낱낱이 고백할 경우 신고로 인정해 주겠다는 것. 힐 차관보가 언급한 ‘형식의 유연성’과도 맥이 닿아 보인다.
세 번째 시나리오는 미국과 중국이 1972년 체결한 ‘상하이 코뮈니케’ 방식을 원용하는 방안이다. 대만 문제로 접점을 찾지 못하던 중국과 미국이 상하이 코뮈니케에 각자의 주장을 병렬적으로 담았듯이 UEP 문제에 대한 미국의 ‘확신’과 북한의 ‘부인’을 나란히 기재해 민감한 문제를 일단 우회하자는 것이다.
문제는 이 세 가지 시나리오가 모두 미국 내 대북 강경파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는 점.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세 가지 시나리오가 과연 ‘완전하고 정확한 신고’와 양립이 가능한지 의문”이라며 “UEP 문제와 핵 확산 분야에서 북한보다 미국이 더 많이 양보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힐, ‘백척간두’에 서다?=13일 스위스 제네바 북-미 양자 접촉에 나선 힐 차관보는 이번 협상에서 뭔가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는 게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대선 정국으로 치닫는 미국 정치 일정상 5, 6월까지 핵 신고 문제에 대한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하므로 이번 제네바 접촉이 사실상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북핵 문제에 보수적인 시각을 가진 국방부는 물론 국무부 관계자들조차 북핵 협상과 관련한 힐 차관보의 정보 독점에 대해 강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두 차례의 평양 방문에 이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대북 친서 전달, 잇단 북-미 양자 접촉에도 불구하고 진전이 더딘 상황을 감안할 때 이번 제네바 접촉에서도 돌파구 마련에 실패할 경우 힐 차관보는 궁지에 몰릴 가능성이 높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