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측 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13일 회담을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완전하고 정확한 신고를 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신고의 형식(form)보다 실체(substance)를 거듭 강조해 북한의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과 시리아로의 핵 이전 신고에 미국이 유연한 자세를 취할 것임을 시사했다.
힐 차관보는 “북한과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다”면서 “이날 논의한 내용을 각각 본국에 보고한 뒤 훈령을 받아 처리할 것이므로 하루 이틀 지나봐야 (실제 진전 상황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힐 차관보는 이날 북한 측 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과 약 11시간 동안 미국대표부, 북한대표부, 인근 레스토랑 등으로 자리를 옮기며 마라톤회담을 한 끝에 밤 12시 무렵 기자회견을 갖고 이같이 회담 상황을 설명했다.
한편 김 부상은 힐 차관보와 저녁 식사를 겸한 협상에 들어가기 전 기자들에게 “회담 결과에 만족한다”고 말했으나 구체적인 내용을 언급하지 않았다.
힐 차관보는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지난해 12월 이후 가장 실질적인 논의를 했고 이곳에 도착했을 때보다 더 나은 단계”라면서 “그러나 ‘우리가 도로를 포장하고 시멘트가 마르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으며, 여전히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게임이 1단계, 2단계로 나아갈수록 점점 어려워지듯 협상도 마찬가지”라며 “점점 더 어려운 협상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해 합의할 내용이 본국의 훈령을 받아야 결정될 정도로 민감해지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날 북-미 양국 대표단은 미국대표부에서 낮 12시 35분경부터 1시간 동안 만난 뒤 각자 점심 식사를 하고 북한대표부로 자리를 옮겨 오후 4시 30분경부터 4시간 동안 마라톤협상을 벌였다. 이어 오후 8시 반경부터 11시까지 인근 오비브 공원의 레스토랑으로 다시 자리를 옮겨 만찬을 겸한 막판 협상을 벌였다.
힐 차관보는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14일 오전 폴란드 바르샤바로 떠나기 전 김 부상과 추가 회담을 할 가능성을 언급했으나 기자회견에서는 “14일 추가 회담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이날 미국대표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는 밤 12시 가까운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국 기자 60여 명이 참석해 회담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보였다.
지난해 10월 3일 북핵 6자회담에서 타결된 ‘2단계 북핵 합의’는 북한에 대해 작년 말까지 핵시설을 불능화하고 모든 핵프로그램을 완전하고 정확하게 신고하도록 했다. 그러나 북한은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 미국은 북한의 이행에 맞춰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북한을 삭제하고 적성국 교역법 적용 해제 절차를 개시하며 중유 및 식량 지원 등 보상 조치를 취하도록 돼 있다.
제네바=송평인 특파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