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위 “비례대표 공천권까진 못 맡긴다”
통합민주당 최고위원회와 공천심사위원회의 충돌은 벌써부터 예상돼 온 사태라는 견해가 많다.
최고위는 그동안 공심위의 일부 후보자 공천 배제에 대해 상당한 불만을 가져 왔다. 공심위는 최고위의 이런 반응을 ‘공심위 무력화 시도’로 받아들였다.
이처럼 공천 과정에서 누적돼 온 양측의 불만이 19일 비례대표 후보자추천심사위원회(추천위) 구성 문제를 계기로 폭발했다는 것이다.
▽정면 충돌=신계륜 사무총장은 이날 오후 박재승 공심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손학규 박상천 대표가 상의해 추천위 명단을 정했다”면서 팩스로 명단을 박 위원장에게 보냈다.
박 위원장은 “나하고 상의도 없이 정할 수 있느냐”며 격노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어 공심위 박경철 홍보간사가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박 간사는 기자회견에서 “박 위원장이 합의하지도 않은 추천위 명단을 일방적으로 통보받았다. 1차 원칙(금고 이상 형 확정자)에서 배제한 인사들이 들어 있었다. 절대 배제 인사가 추천위원으로 선임되는 상황을 달리 해석할 도리가 없다”고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박 간사는 “(최고위의 행위는) 공심위보고 ‘물러나라’고 요구한 것”이라면서 “공심위의 독립성이 지켜지지 않으면 중대 결심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해 12명의 공심위원 가운데 당 외부 출신 7명이 전원 사퇴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이날 통보된 추천위원은 절대 배제 인사로 지목된 김민석 최고위원, 신 사무총장 외에 박 위원장, 신명자 사회복지법인 보금자리 이사장, 정일용 한국외국어대 교수, 김수진 이화여대 교수, 강금실 최고위원, 김영주 사무부총장, 김규섭 김광삼 변호사, 박명서 전 경기대 정치대학원장 등 11명이다.
최고위의 반응도 즉각적이었다. 박 간사의 기자회견 직후 두 대표와 신 사무총장, 김 최고위원은 국회 박 대표 방에 모여 ‘추천위 구성은 당 대표 권한’이라는 데 의견을 함께했다.
우상호 대변인은 기자간담회를 열고 “(공심위가) 공개적인 기자회견을 통해 비판한 것은 적절치 않다. (신 사무총장, 김 최고위원을) 정치권에서 영원히 퇴출시키란 말이냐. 공심위의 독립성도 훼손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한 최고위원은 “공심위 심사가 잘못된 게 하나 둘이 아니지만 당을 생각해 참아왔다. 손 대표가 최근 박 위원장에 대해 ‘(의도가) 사악하다’고까지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최고위원은 “대화로 해결할 시점은 이미 지났다. 박 위원장이 사퇴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누적된 갈등=최고위는 그동안 공천 심사 과정과 상당수 공천자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공천”이라며 불만을 표시했다. 그러나 전권을 준 상태여서 바꿀 수도 없었다. 유인태 최고위원이 “우리가 고무도장이냐”고 말한 것도 이 때문.
최고위는 △여론조사에서 앞선 후보가 2배수, 4배수 압축에도 들지 못하고 △공심위가 특정 인사를 공천하기 위해 경미한 사안까지 확대 해석하고 있으며 △무리한 잣대로 당선이 가능한 인사들을 배제해 온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공심위는 최고위가 공심위를 무력화하기 위해 △최고위의 재심 요구에 대해 공심위가 3분의 2 이상 반대하지 않으면 당의 결정을 받아들이고 △두 대표와 박 위원장의 3자 합의를 깨고 두 대표가 전략공천을 요구할 경우 공심위 권한을 정지할 것을 요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박재승 공심위원장은 19일 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자택 근처에서 본보 기자와 만나 “지금 상태로선 위원장 자리를 유지하는 게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그동안 당 지도부는 공천 과정에서 나를 배제하기 위해 위원장 해촉 논의를 수차례 했고 공심위 권한을 무력화하기 위한 조치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20일부터 당분간 공심위 회의는 열리지 않으며 나도 며칠간 여행이라도 떠나고 싶은 생각”이라며 “당 지도부는 이번 상황을 이용해 나를 해촉한 뒤 입맛에 맞는 다른 위원장을 영입해 지역구 전략 공천 및 비례대표 선정을 좌지우지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비판했다.
만일 박 위원장이 사퇴할 경우 민주당은 엄청난 후폭풍에 휘말릴 것으로 보인다. ‘쇄신공천’으로 쌓은 지지율 상승도 박 위원장의 사퇴와 함께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고기정 기자 k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