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6층이상 건물 동참땐 연 2306억원 아껴
상당수 기업들 ‘전력 낭비 없애기’ 이미 실천
“점심 식사하러 가실 때에는 불필요한 전원 코드는 빼 주시기 바랍니다.”
안내방송이 나왔지만 기획재정부 국부운용과와 국제기구과에는 조명과 컴퓨터가 그대로 켜져 있었다.
다른 부서 여직원은 마지막까지 남아 있다가 식사하러 나가면서 문을 잠갔지만 스위치를 내리지 않았다. 20일 낮 12시경 정부과천청사의 풍경이다.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같은 날 낮 12시 반경 전체 사무실에서 조명을 끈 곳은 절반이 되지 않았다. 직원 한두 명만 있는데도 사무실 전체의 조명을 켜 놓은 곳도 보였다.
청사 관리소 직원은 “안내와 홍보를 지속적으로 하지만 강제 사항이 아니다 보니 자발적인 참여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고 아쉬워했다.
비슷한 시각 서울 광화문의 현대해상 빌딩. 17층 건물 전체가 어두웠다. 중앙관제센터에서 건물 전체의 조명을 껐기 때문이다.
점심시간에 근무하는 사람만 수동으로 조명을 켤 수 있다. 2004년 건물을 리모델링하면서 이렇게 에너지를 절약하는 시스템으로 바꿨다. 서울 강남구의 포스코 사옥도 점심시간에는 조명이 자동으로 꺼진다.
상대적으로 오래된 정부 청사와 새로 지은 민간 빌딩을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민간 기업이 에너지 절약을 위해 쏟는 노력은 정부기관에 비할 바가 아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무역센터를 운영하는 코엑스(COEX)는 코엑스몰과 현대백화점, 인터컨티넨탈호텔(코엑스, 그랜드) 등 11개의 건물을 관리한다. 연면적만 100만 m²를 넘으므로 중앙관제센터가 일괄적으로 조명을 관리하기 힘들다. 대신 코엑스는 전 직원에게 에너지 관련 행동 지침을 내리고 지키도록 했다.
점심시간 소등은 기본이다. 시설운영팀과 감사실 직원은 수시로 현장을 돌며 낭비하는 전력이 없는지 점검한다.
1000여 명의 안전요원과 청소직원은 ‘에너지 지킴이’다. 근무하는 곳에서 혹시 있을지 모르는 낭비 요인을 없앤다. 이런 식으로 코엑스가 한 달에 아끼는 전기료만 1500만 원이다.
에너지관리공단에 따르면 전국에 있는 6층 이상 건물 5만2000곳(2005년 12월 현재)이 점심시간에 한 시간씩 전기를 끄면 1년에 2306억 원을 줄일 수 있다.
코엑스의 오수영 차장은 “우리에게 에너지는 비용이고, 비용은 생존과 직결된다”고 말한다. 에너지 절약을 권장할 뿐 스스로 지키지 않는 정부 기관과는 자세부터 다르다.
▼李대통령 “공직사회부터 에너지 절약 나서야”
금융권에서도 절약 캠페인 동참 확산▼
이명박 대통령은 20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경제상황과 서민생활 안정을 위한 점검회의’에서 “국민들이 협력해 에너지를 절약하는 게 매우 중요하지 않겠는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대통령은 “공직사회는 작은 것에서부터 에너지를 절약하는 모습을 보이고 각 부처는 적극적 사고로 에너지 절약에 임해줬으면 한다”면서 “기업도 낭비를 줄이면서 에너지를 절약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는 게 좋겠다”고 덧붙였다.
금융권에서도 에너지 절약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우리금융그룹의 박병원 회장은 19일 전 직원 2만3000여 명에게 e메일을 보내 “치열한 경쟁 속에서 그룹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소모성 경비 절감 운동을 전개한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퇴근할 때 컴퓨터 전원 끄기 △사무실 냉난방온도 1도 줄이기 △3층 이내 계단 이용 △종이컵 사용 자제 △복사비용 절감 등을 제시했다.
박 회장은 “원유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노력이 원자재 수입을 줄이는 데 기여한다면 국가적 차원에서도 사소한 일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 [대한민국2008+10&-10]①생활속 에너지 절약 - [대한민국 2008 +10&-10]② 생활 속 에너지 절약 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