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직책 사양… 조용히 처신하겠다
불출마 요구, 당 위한 충정으로 이해”
《이재오 의원이 이상득 국회부의장과의 동반 불출마 카드로 총선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당권까지 장악하려던 꿈을 접고 25일 총선 출마를 선언했다. 이심(李心·이명박 대통령의 마음)을 등에 업은 이 부의장에게 사실상 항복을 선언한 것. 이재오-정두언-소장파 등 친(親)이명박 연합세력의 타깃이 됐던 이 부의장은 후보 등록을 마쳤다. 그러나 정두언 의원은 이날 이 부의장의 불출마를 요구한 55명을 ‘생육신’으로 불러달라며 자신들의 행동이 옳았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공천 탈락 친박 인사를 복당시켜야 한다’고 주장했고 당권 도전을 선언한 정몽준 의원도 ‘복당은 유권자의 뜻에 맡겨야 한다’고 가세했다. 바야흐로 총선 이후 한나라당에 권력투쟁의 태풍이 불 조짐이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 공천 파동의 핵이었던 이상득 국회부의장은 25일 “밤새 고민 끝에 나의 경륜과 경험이 대통령에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으로 총선 출마를 결심했다. 만약 당선되면 당과 국회에서 어떤 직책도 맡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 부의장은 이날 총선 후보 등록 직전 포항의 선거사무실에서 간담회를 열어 “임기 동안 지역 발전과 경제외교로 경제 살리기를 위해 노력하고 대통령 친인척으로 몸 관리와 처신을 철저히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부의장은 “모두 탈락하고 나 혼자 남은 게 염치없지 않으냐는 말을 듣고도 끝까지 나가면 대통령과 나라에 누가 된다는 생각도 했었다”면서 “지지자들에게는 반드시 출마한다고 큰 소리쳤지만 사실 꼬박 밤을 새며 등록을 포기할까도 고민했다”고 말했다.
이 부의장은 특히 권력투쟁설과 관련해 “이재오 의원과는 경쟁이나 적대 관계도 아니고 권력다툼은 더더욱 아니다”며 “불출마를 요구했던 남경필 의원으로부터 간접적으로 사과를 전해 받았고 수도권 초·재선 의원들도 정상적으로 선거운동에 전념키로 해 부담을 덜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55명의 총선 불출마 요구자들을 향해 “아무런 유감도 없다. 그분들도 당과 나라를 위한 충정에서 그런 말씀을 하는 것”이라며 “당의 화합과 단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라는 경고의 의미로 깊이 새기겠다”고 덧붙였다.
당내에선 공천 파동을 둘러싼 이 부의장과 이재오 의원 및 ‘친이명박’계 소장파 세력 간의 권력게임은 사실상 이 대통령의 ‘후방 지원 사격’을 받은 이 부의장의 완승으로 끝났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 때문에 총선 후 이 부의장의 당내 권력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더욱 공고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는다. 이 부의장이 7월 전당대회에서 당권의 향배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도 뒤따른다.
한 당직자는 “권력의 속성상 당의 원로그룹과 이상득 계보는 물론 기존의 소장파 세력들까지 급속히 이 부의장의 우산 밑으로 몰려들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반면 오히려 이 부의장의 행보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관측도 있다. 권력 핵심으로 각인된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초미의 관심사인 만큼 당내 현안에 적극 개입하는 모습이 포착될 경우 그에 따른 당 안팎의 비판이 더 거세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부의장이 7월 전당대회 때 당권 경쟁에서 중립적인 자세를 취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지만, 이 부의장의 힘을 빌려 권력을 잡으려는 사람들이 나올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와 관련해 수도권의 한 초선 의원은 “이 부의장은 정치를 하는 동안 합리적인 모습을 보였다”면서 “하지만 앞으로 이 부의장의 행보가 논란이 된다면 ‘55인’ 세력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훈 기자 taylor55@donga.com
파워게임 밀린 셈… 문국현과 힘겨운 승부 불가피
당내 “당선땐 당권 근접… 낙선땐 정치적 치명상”▼
한나라당 이재오 의원이 25일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이 의원은 이날 오전 서울 은평구 구산동 자택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미 어떤 이유로도 갈등과 분열의 중심에 서지 않겠다고 공언했고 그동안 어떤 음해에도 대꾸하지 않았다”며 “이제 모든 오해와 음해를 뚫고 정권 교체의 참뜻을 실현하는 데 내 전부를 바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출마 선언을 놓고 당내에는 “이 의원의 ‘친위 쿠데타’ 시도가 일장춘몽으로 끝났다”는 말이 나왔다.
그동안 ‘한반도 대운하’를 당권 도전의 승부수로 삼아 온 이 의원은 “대운하는 반대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국민의 뜻을 직접 묻는 방법을 택할 것을 대통령께 건의하겠다”고 한발 물러서기도 했다.
이 의원은 악화되고 있는 총선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총선 후 당 주도권까지 장악하기 위해 내각 인선 과정 등에서 ‘독주설’이 나돈 이상득 국회부의장과 자신의 ‘동반 불출마’ 카드를 던졌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반대에 부닥쳐 뜻을 이루지 못했다. 친이 직계 라인의 핵심인 정두언 의원과 당 공천 상황에 불만을 품은 것으로 알려진 남경필 박형준 의원 등 소장파의 가세도 큰 힘이 되지 못했다.
이 의원은 당권 도전 의사를 묻는 질문에 “저는 이미 마음을 비웠다. 난 이명박 정권 아래서 변함없는 이재오다”며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만에 하나 이 의원이 총선에서 낙선할 경우 당권 도전은 물론 정치적 재기 자체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계파 간 세력 다툼에서 밀렸기 때문에 친이 계열의 구심점이 되기도 어려울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이 의원은 이날 회견에서 “은평은 특수성이 있어 여론조사 격차는 큰 영향이 없다”고 했지만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에게 지지율이 15%포인트 정도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의원의 측근들은 저녁마다 모여 “낙선하면 당권이 물 건너간다”며 노심초사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이 의원이 당선되고 당도 과반 의석을 확보할 경우 그가 대주주 성격의 당 대표가 되겠지만 낙선한다면 7월 전당대회에서 당권에 도전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 경우 측근들을 통해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며 2년 뒤에나 당권에 도전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지만 권력의 세계에서 2년은 너무 길다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 영상 취재 : 서중석 동아닷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