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명 줄사표에 “대세 따르겠다” 기류 확산

  • 입력 2008년 4월 15일 02시 58분


최근 공기업 등 정부 산하기관장에 대한 물갈이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수장이 교체대상에 오른 조직들은 술렁이고 있다. 최근 김창록 총재가 사의를 표명한 한국산업은행의 종로지점(왼쪽)과 조환익 사장이 사의를 밝힌 한국수출보험공사. 신원건 기자
최근 공기업 등 정부 산하기관장에 대한 물갈이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수장이 교체대상에 오른 조직들은 술렁이고 있다. 최근 김창록 총재가 사의를 표명한 한국산업은행의 종로지점(왼쪽)과 조환익 사장이 사의를 밝힌 한국수출보험공사. 신원건 기자
■ 공기업-정부산하기관 CEO 물갈이 태풍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한 정순균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의 사표가 수리됐다고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가 14일 밝혔다. 이재훈 지식경제부 제2차관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에너지 공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의 사의 여부에 대한 질문을 받고 “에너지 공기업 CEO들이 대부분 사표를 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 공기업들에서도 사의 표명이 이어지고 있다. 앞서 보건복지가족부 등 일부 부처가 주요 산하 기관장들로부터 일괄 사표를 받았다. 아직 사표를 제출하지 않은 사람들도 대개 “대세를 따르겠다”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

지경부 차관 “에너지 공기업 CEO 대부분 사표”

산업은행 이어 他금융CEO도 사의표명 잇따를듯

감사원-재정부, 132곳 대상 감사-경영평가 착수

전문가 “개혁계기 돼야… 낙하산 반복돼선 안돼”

○ 줄줄이 사표 내는 공기업 CEO들

공기업과 공공기관 등 정부 산하기관장에 대한 물갈이가 ‘매머드급’ 태풍으로 불고 있다. 재신임을 묻는 절차라고 하지만 살아남는 기관장은 많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305개 공공기관 가운데 14일까지 50여 기관장이 사의를 표했다. 관가와 공공기관에서는 “이 중 교체되는 곳이 200곳에 이를 것”이라는 청와대 쪽의 말에 경악하고 있다.

지경부 산하 69개 공기업 및 공공기관 가운데 이원걸 한국전력 사장, 황두열 한국석유공사 사장, 이수호 한국가스공사 사장, 이한호 대한광업진흥공사 사장 등 30여 명이 총선을 전후해 직간접적으로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 공기업과 관련해 금융위원회 유재훈 대변인은 “김창록 산업은행 총재 외에 거취와 관련한 의견을 표시한 기관장이 더 있지만 공식적으로 밝힐 수는 없다”고 14일 말했다. 유 대변인은 “(금융 공기업 기관장에 대해) 전체적인 재신임을 묻는 과정으로 대상은 정부가 대주주로 있거나 정부가 임면 관련 의사를 밝힐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예금보험공사가 대주주인 우리금융지주 등도 포함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에 앞서 복지부는 산하 기관장들로부터 일괄 사표를 제출받아 대부분 수리했다. 가장 먼저 이재용 국민건강보험공단 전 이사장이 18대 총선을 앞두고 2일 사표가 수리됐다.

국토해양부 산하 기관 가운데 박세흠 대한주택공사 사장, 김재현 한국토지공사 사장, 곽결호 한국수자원공사 사장이 사의를 표명했다.

환경부 산하 기관장으로는 손주석 환경관리공단 이사장과 박화강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이 사의를 표명했으며 고재영 한국환경자원공사 사장이 사표를 제출했다.

노동부에서는 박길상 한국산업안전공단 이사장 등 7명이 사의를 밝혔다. 이 가운데 18대 총선에서 통합민주당 비례대표로 당선된 박은수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이사장은 사표가 수리됐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경우 최근 정재왈 서울예술단 이사장을 포함해 5명의 산하기관 및 단체장이 사표를 냈다.

한 공기업 사장은 “전문 관료 출신 기관장들은 임면권자의 의사에 끝까지 저항하는 체질이 아니어서 대세가 정해지면 따르는 경향이 짙다”고 말했다.

한편 대통령 자문기구인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의 김성중 위원장과 최병훈 상임위원이 지난 주말 사의를 표명했다고 14일 노사정위 관계자가 밝혔다.

○ 미제출 CEO에 압박 수위 높일 듯

이번 물갈이 태풍으로 정부 산하기관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노무현 정부의 ‘코드 인사’ 또는 ‘보은 인사’ 출신과 관료 출신 기관장들은 대부분 솎아질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상당수는 이미 사의를 표명했지만 끝내 사표를 내지 않는 기관장들에 대해서는 전방위 압박이 가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기획재정부는 최근 공기업 및 준정부기관 101곳에 대한 강도 높은 경영평가에 착수했다. 기관과 기관장뿐 아니라 감사까지도 평가 대상에 포함시켰다.

이와 별도로 감사원은 지난달 10일부터 한국도로공사 한국조폐공사 KRA(한국마사회) 등 31개 공기업을 대상으로 감사를 진행 중이다. 감사원은 공기업 감사를 18일까지 마치고 다음 달 중하순 감사 결과를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감사원은 이들 31개 공기업 감사를 마친 뒤에는 다음 달 다른 공기업들을 대상으로 2단계 예비감사를 시작할 방침이다.

재정부 경영평가와 감사원 감사 결과는 일부 공공기관장에게 사퇴를 압박하는 강력한 수단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 새 정권의 ‘보은 인사’ 정지작업은 안 돼

정부의 사퇴 압박에 대해 기관장들 사이에는 반발 기류도 없지 않다. 전문성을 인정받아 선임된 CEO가 왜 ‘코드 출신’들과 함께 일괄 사표를 내야 하느냐는 것이다. “차제에 정권과 같이해야 할 기관장에 대해서는 임기제를 폐지하고 그 외에는 법적 임기를 존중하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재정부 내 공공기관운영위원회의 윤영진(계명대 행정학과 교수) 위원은 “공공기관운영법이 만들어진 것은 전문성이 떨어지는 인물의 낙하산 인사를 막기 위한 것이다. 절차를 거쳐 임명된 기관장들이 압력을 받고 물러나는 것은 법치주의에 어긋난다. 이달 하순 열릴 예정인 운영위에서 이 문제를 정식으로 제기하겠다”고 말했다.

현진권 아주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번 공공기관장 물갈이 작업이 철저하게 ‘공공부문 개혁’의 취지에 맞게 추진돼야 하며 빈자리에 ‘제 밥그릇 챙기기’ 인사를 하면 거센 정치적 역풍을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치영 기자 higgledy@donga.com

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사의를 표명한 공기업 및 산하기관 CEO 자료: 각 기관
공기업CEO임기만료 시점주요 경력사표 수리 여부
한국산업은행김창록 총재2008년 11월재정경제부 관리관(1급),
금융감독원 부원장
미정
한국자산관리공사이철휘 사장2011년 1월재정경제부 장관보좌관, 아시아개발은행(ADB) 상임이사, 미정
중소기업은행윤용로 행장2010년 12월재정경제부 은행제도과 과장,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미정
대한주택공사박세흠 사장2010년 3월대우건설 사장미정
한국토지공사김재현 사장2008년 11월토지공사 부사장미정
한국수자원공사곽결호 사장2009년 9월환경부 장관미정
대한석탄공사김원창 사장2010년 2월정선군수(새천년민주당)미정
한국석유공사황두열 사장2008년 11월SK㈜ 대표이사 부회장미정
한국가스공사이수호 사장2008년 11월LG상사 대표이사 부회장미정
한국전력이원걸 사장2010년 3월산업자원부 2차관미정
대한광업진흥공사이한호 사장2009년 12월공군참모총장미정
한국지역난방공사김영남 사장2008년 7월해양수산부 차관미정
한국가스안전공사이헌만 사장2009년 10월경찰청 차장미정
한국전기안전공사양재열 사장2010년 5월대통령경호실 차장미정
한국중부발전정장섭 사장2008년 8월산업자원부 무역정책실장미정
한국산업단지공단김칠두 이사장2007년 10월산업자원부 차관미정
한국산업기술시험원홍종희 원장2008년 5월산업자원부 기술표준원
안전서비스표준부장
미정
한국수출보험공사조환익 사장2010년 5월산업자원부 1차관미정
환경관리공단손주석 이사장2009년 5월지방자치연구원 조직기획실장미정
한국환경자원공사고재영 사장2009년 6월환경부 환경정책실장미정
국립공원관리공단박화강 이사장2009년 7월한겨레신문 국장대우미정
근로복지공단김원배 이사장2010년 2월노동부 기획관리실장미정
한국산업인력공단김용달 이사장2008년 12월노동부 고용정책실장미정
한국산업안전공단박길상 이사장2008년 5월노동부 차관미정
한국장애인고용
촉진공단
박은수 이사장2008년 6월열린우리당 중앙위원수리
한국고용정보원권재철 원장2009년 3월대통령노동비서관
(노무현 정부)
미정
한국폴리텍대학박용웅 이사장2010년 4월노동부 능력개발심의관미정
한국기술교육대학정병석 총장2010년 2월노동부 차관미정
경제사회발전
노사정위원회
(대통령 직속)
김성중 위원장2009년 7월노동부 차관미정
한국방송광고공사정순균 사장2009년 5월국정홍보처장수리
서울 예술의 전당신현택 사장2009년 2월여성가족부 차관미정
국제방송교류재단장명호 사장2009년 3월방송문화진흥회 사무처장미정
한국정책방송원윤형식 원장2009년 3월청와대 행정관미정
서울예술단정재왈 이사장2008년 12월LG아트센터 공연부장미정
국민건강보험공단이재용 이사장2009년 8월열린우리당 중앙위원,
환경부 장관
사표 수리 후 총선출마. 낙선
국민연금공단김호식 이사장2008년 6월국무조정실장,
해양수산부 장관
수리
건강보험심사평가원김창엽 원장2009년 7월서울대 의대 교수수리
건강보험
심사평가원
전혜숙 감사2009년 1월열린우리당 국민참여본부
상근본부장
사표 수리 후 민주당 비례대표 당선.
한국보건
산업진흥원
이용흥 원장2010년 1월복지부 정책홍보관리실장수리
국립암센터유근영 원장2009년 4월서울대 의대 교수수리
한국청소년상담원이배근 원장2008년 7월아동학대예방협회장수리
한국청소년수련원이창식 이사장2008년 8월새마을운동중앙회 사무총장
겸 새마을연수원장
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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