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통미봉남 정책 이젠 안 통할 것”

  • 입력 2008년 4월 22일 02시 52분


한미정상회담 이후의 남북관계 통일연구원 전문가 6명 좌담

향후 핵폐기 3단계 한미공조체제 정립

한국과 대화없는 北 - 美접촉 어려워져

독일 경우 보수정권 집권후 되레 큰결단

이명박 정부 대북지원 더 순조로울수도

한미 정상회담 이후의 남북관계는 어디로 갈 것인가. 북한은 회담 결과를 어떻게 인식하고 대응할 것인가. 한국 정부가 취할 수 있는 후속 조치는 무엇인가. 본보와 국책연구원인 통일연구원이 긴급 전문가 좌담회를 열고 이 문제를 논의했다.

좌담은 20일 오전 11시부터 2시간 동안 서울 강북구 통일연구원 회의실에서 진행됐다. 조민 통일정책연구실장의 사회로 서재진 북한연구실장, 박영호 국제관계연구실장, 박종철 최진욱 박형중 선임연구위원이 참여했다.

○李대통령, 美의 대북협상력 높여줘

▽최진욱=이명박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서 북한의 성실한 핵 신고와 철저한 검증을 강조해 임기 말의 부시 대통령이 핵 폐기 3단계로 성급하게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를 불식하려고 노력했다. 향후 핵 폐기 3단계에서 한국과 미국의 공조체제를 정립했다.

▽서재진=이 대통령이 북한의 특수성을 고려해 ‘그 정도면 신고를 한 것’이라고 인정해준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 대통령은 한미 공조를 통해 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낙관론을 바탕으로 북한이 호응하면 이에 상응해 대화하겠다는 원칙을 피력했다.

▽박종철=양국 정상이 몇 차례나 ‘6자회담의 틀’을 강조한 것은 9·19와 10·3선언 등 그동안의 합의를 존중하고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등 비핵화 이외의 포괄적 이슈들을 병행해 다루겠다는 것을 확인한 셈이다.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참가국들의 역할과 지원도 요청했다.

▽박형중=이 대통령은 핵 문제 해결에 대한 미국의 방침을 지지해 협상력을 높여 주었다. 그 대신 부시 대통령은 한국의 대북정책을 지지해 북한에 ‘통미봉남(通美封南)은 불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주었다.

○남북연락사무소 대북 첫 돌파구

▽서=북-미 핵 협상이 진전돼 핵 신고 후 두 나라가 서로 연락사무소를 설치할 경우를 상정해 나온 제안이라고 본다. 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에 돌파구를 열고자 하는 새 정부의 첫 번째 대북 제의다.

▽박종철=남북기본합의서를 강조하는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기본합의서 체제는 남북이 상시적 대화 기구를 만들어 전방위적으로 모든 문제를 논의하는 것이다. 그러나 6·15남북공동선언 이후 정부는 가능한 분야에서 북한과 협력하고 필요에 따라 대화의 틀을 만들어 활용했다.

▽최=그렇다. 그동안 북한은 10년 동안 남북대화를 남한에 주는 선물로 생각했다. 이산가족 상봉이나 장관급 회담에 응하는 대가로 쌀과 비료를 얻어갔다.

○6자회담 진전돼야 인도적 지원

▽서=북한은 이제 한국과 대화하지 않고는 미국과 통하기 어렵다고 인식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 대통령의 남북연락사무소 설치 제의는 대화의 계기가 될 수 있다. 북한이 ‘만나서 이야기 해보자’는 수정 제의를 한 뒤 자연스럽게 식량 지원을 요청할 수 있다.

▽박형중=동서독 사례에서도 좌파인 사민당이 집권했을 때는 동독에 대한 지원을 놓고 내부에서 또는 미국과 갈등이 있었다. 오히려 보수 정권인 기민당의 헬무트 콜 총리가 집권하면서 동독에 대한 유연하고 큰 결단이 가능했다. 우리도 새 정부 출범에 따라 대북 지원이 더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다. 한국이 남북기본합의서 정신의 틀 안에서 10·4선언을 해석하고 북한이 이를 한국 정부가 10·4선언을 받아들인 것으로 이해한다면 대화가 가능할 것이다.

▽박종철=좀 생각이 다르다. 북한은 통미봉남의 기조 속에서 이익이 되는 것만 선별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이 대통령은 회담 결과를 정리해서 남북대화를 재개할 후속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고위급 특사 등 공식 비공식 회담을 재개할 단계가 됐다. 대북 지원을 고리로 활용하고 새 대북정책과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

▽박영호=북-미 협상이 진전되는 만큼 북한이 당분간 남북관계에 적극적으로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6자회담이 진전되면 우리 정부도 대북 인도적 지원의 계기 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최=북한이 오해하지 않도록 남북관계의 변화 방향과 경협의 원칙 등을 설명해 주어야 한다. 새로운 대북정책의 추진 체계를 정립하고 사령탑을 세워 이끌어 가야 한다.

○北, 한미관계 발전 직시해야

▽박종철=남북관계가 조정기를 거치고 있다. 북한도 적응을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북한은 한국에서 남북 문제가 탈(脫)이념화, 탈정치화되고 있다는 점을 읽어야 한다. 1990년대와 같은 통미봉남 정책은 통하지 않는다. 당시는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북-미가 양자 협상을 했지만 지금은 6자회담을 통해 국제 공조가 이뤄지고 있다. 당시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은 대북 포용정책을, 한국의 김영삼 대통령은 봉쇄정책을 폈지만 지금은 한미가 견해를 같이하고 있다. 지금의 한국은 인도적 지원이나 남북경협 등 경제적인 지렛대를 가지고 있다.

▽서=북한은 한미관계의 발전적 변화를 직시하고 국제사회에 책임 있는 일원으로 참여하는 것이 제1의 생존전략임을 알아야 한다.

▽박형중=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통 크게’ 개혁에 나서는 경우 주변국들은 북한의 체제 유지와 내부 정치 안정에 협조할 것이다. 그것이 주변국에도 이익이기 때문이다.

정리=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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