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국인들 조직적 난동” 분노

  • 입력 2008년 4월 29일 02시 59분


27일 2008베이징올림픽 성화봉송 출발지인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성화보송을 지켜보던 중국 유학생들이 한 시민을 집단 구타하고 있다. 이 시민은 경찰에 의해 구출돼 병원으로 옮겨졌다. 신원건 기자
27일 2008베이징올림픽 성화봉송 출발지인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성화보송을 지켜보던 중국 유학생들이 한 시민을 집단 구타하고 있다. 이 시민은 경찰에 의해 구출돼 병원으로 옮겨졌다. 신원건 기자
올림픽 성화 지나간 남과 북

《27일 베이징 올림픽 성화가 통과한 서울의 도심은 오성홍기(五星紅旗)의 붉은 물결에 점령당했다. 일부 중국인 시위대는 한국 경찰과 시민들에게 무차별 폭력을 휘둘러 시민들을 경악하게 했다. 한국 정부도 28일 중국 측에 유감을 표명해 이번 사건이 외교 문제로 비화할 조짐이다. 이를 계기로 한국 내 반(反)중국 감정의 고조와 양국 간 뿌리 깊은 민족주의의 충돌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근원에는 중국 정부의 조장과 묵인 아래 커 온 중국인들의 ‘관제 민족주의(Official Nationalism)’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南“서울 한복판에서 우리 국민들이 중국인 유학생들에게 맞다니….”

베이징 올림픽 성화 봉송 행사 중 보여준 중국 유학생들의 과격행동과 자국민 보호에 무기력했던 경찰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7일 성화 봉송 행사에 참가한 중국인 유학생은 모두 6000여 명. 이들은 일제히 오성홍기를 흔들며 위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했고, 일부는 성화 봉송 반대 시위대와 경찰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이를 지켜본 시민들은 “오성홍기 깃대가 둔기로 변했고, 물병과 돌멩이 심지어 금속절단기까지 날아다녔다. 믿기 힘든 광경이 펼쳐졌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 영상취재 : 신세기 동아닷컴 기자

시위 현장에 있었던 회사원 김정원(35) 씨는 “축제로 생각해 가족들과 올림픽공원에 들렀다가 깜짝 놀라 자리를 피했다”며 “중국인들이 서울에서 폭동을 일으킨 것”이라고 성토했다.

누리꾼들도 분노를 표출했다. ‘잠실늘푸름’이라는 아이디의 누리꾼은 포털사이트에 글을 올려 자신을 폭행한 중국인 유학생을 수배했다.

이 누리꾼은 폭행 당시 사진과 엑스레이 촬영 사진을 공개하며 “올림픽공원에서 중국 유학생들에게 30분간 집단 구타당했다. 직접 검거에 도움을 주는 분들에게 100만 원을 사례하겠다”고 호소했다.

눈앞에서 자국민이 중국인들에게 폭행을 당했지만 경찰은 속수무책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중국인 유학생이 5000명 정도 참여한다는 것은 미리 알고 있었지만 환영 인파로만 생각해 사전에 통제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경찰은 앞서 중국 측으로부터 성화 경비와 함께 중국인 유학생들의 환영행사에 협조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닝푸쿠이(寧賦魁) 주한 중국대사가 어청수 경찰청장을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중국인 유학생들이 오성홍기와 오륜기, 태극기를 준비해 성화를 환영할 것으로 알고 경비를 준비했다”며 “하지만 막상 오성홍기가 시내를 뒤덮은 모습을 보니 섬뜩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행사 현장인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이상 징후’를 발견했지만, 9000여 명의 경찰이 성화 경비에 집중돼 폭력 사태를 막지 못했다. 이에 대해 누리꾼들은 “대한민국 경찰인지, 중국 공안인지 헷갈릴 지경”이라며 경찰의 안이한 대응을 꼬집었다.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 영상취재 : 신세기 동아닷컴 기자

평양, 봉송로 일일이 손으로 닦아

北 28일 오전 북한 평양에 도착한 올림픽 성화는 지난해 10월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이곳을 방문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보다 훨씬 더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노 전 대통령의 방문 당시엔 10여만 명의 군중이 6km의 연도에 늘어서 환영했다. 반면 올림픽 성화는 20km의 연도에 늘어선 40여만 명 시민들의 환호를 받았다고 중국 언론들이 평양발로 보도했다.

신화통신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올림픽 성화 봉송에 대해 수차례의 지시를 내렸다”고 보도해 북한이 이번 행사에 큰 정치적 관심을 가졌음을 시사했다.

이어 “평양 시민들이 새벽부터 중국대사관 앞을 비롯한 성화 봉송로를 일일이 손으로 닦았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봉송로의 대부분 구간에 아스팔트를 새로 깔았으며 주변 건물들의 외벽도 새로 칠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CNN방송은 거리에서 중국 국기와 올림픽기, 인공기를 흔들며 환호하는 평양 시민들의 모습을 방영했다. 무용단과 악대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북한은 중국에 오성홍기와 인공기를 각각 1만 개씩 주문해 들여온 것으로 전해졌다.

성화 봉송에는 1966년 런던 월드컵 8강의 주역 박두익을 시작으로 1999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자마라톤 금메달리스트였던 정성옥까지 80명의 주자가 참가했다. 56명은 북한 측이 선정했고 12명은 중국 유학생, 화교, 외교관 등으로 중국 측이 선정했다. 나머지 12명은 올림픽 협찬사들이 파견했다.

각국의 성화 봉송이 철통 경호 속에 진행된 것과 달리 평양에서는 주자마다 6명 정도의 호위대만 따라 뚜렷한 대조를 보였다.

또 서울과 달리 평양에서는 200여 명의 중국인과 화교만이 출발 행사에 모습을 드러냈다. 북한에 있는 중국인 유학생은 김일성대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100여 명이 거의 전부이다.

중국 언론들은 특히 모란봉 기슭 ‘우의탑(友誼塔)’ 앞의 성화 전달식에 주목했다. 이 탑은 중공군의 6·25전쟁 참전을 기념해 세워진 것으로 류샤오밍(劉曉明) 북한 주재 중국대사가 이곳에서 24번째 주자로 성화를 이어받아 달렸다. 신화통신은 이에 대해 “역사와 전통을 계승 확대하고 양국의 전통적 우정을 촉진시키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중국 CCTV는 성화 봉송이 시작될 때부터 특파원을 연결해 평양의 이례적인 환호 열기를 시시각각 전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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