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신고서 제출-테러국 삭제’ 동시진행

  • 입력 2008년 5월 12일 03시 07분


넘어오는 북핵 박스 8일 방북해 북한과 핵 프로그램 신고 문제를 협의했던 성 김 미국 국무부 한국과장(가운데) 일행이 10일 북한의 1986년 이후 영변 핵 원자로 가동일지 등 핵 관련 자료가 담긴 박스들을 직접 들고 판문점 북측 구역에서 군사분계선을 통해 남측으로 내려오고 있다. 판문점=사진공동취재단
넘어오는 북핵 박스 8일 방북해 북한과 핵 프로그램 신고 문제를 협의했던 성 김 미국 국무부 한국과장(가운데) 일행이 10일 북한의 1986년 이후 영변 핵 원자로 가동일지 등 핵 관련 자료가 담긴 박스들을 직접 들고 판문점 북측 구역에서 군사분계선을 통해 남측으로 내려오고 있다. 판문점=사진공동취재단
지난해 베이징에서 열린 제6차 6자회담 2단계 전체 회의.
지난해 베이징에서 열린 제6차 6자회담 2단계 전체 회의.
美 성 김과장, 예상보다 많은 ‘북핵 박스’ 7개 갖고 南으로

1만8000쪽 분량 핵시설 22년 기록 담겨… 美 “양보다 질”

“北자료 핵검증 충분땐 美의회도 테러국해제 반대 안할듯”

북핵 협상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핵 불능화 및 핵 시설 신고 시기 등을 규정한 지난해 10·3합의 후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및 시리아 핵 협력에 대한 신고 문제로 공전을 거듭한 지 7개월여 만에 북핵 협상 재개의 숨통이 트인 것이다.

▽1만8000쪽 자료엔 무엇이 담겼나=성 김 미국 국무부 한국과장 등 미 방북단 일행은 10일 방대한 양의 북핵 관련 자료가 든 7개의 상자를 보란 듯이 들고 군사분계선을 넘어 서울에 왔다. 북-미 협상의 성과를 최대한 강조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주한 미대사관 측은 성 김 과장이 서울에 도착한 후 공개한 미 국무부 대변인실 자료(fact sheet)를 통해 7개의 상자에는 1만8000쪽 분량의 방대한 핵 관련 자료가 담겨 있다고 밝혔다. 미대사관 측은 이 자료들이 영변 소재 5MW 원자로와 사용 후 연료봉 재처리 시설의 운영 기록이며, 자료의 기점은 198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덧붙였다. 한마디로 북한의 플루토늄 추출에 관한 기초자료가 모두 들어있는 셈이다.

특히 북한은 성 김 과장 등에게 플루토늄의 총량과 관련해 지난해 11월 밝힌 30kg 내외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재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생산한 플루토늄의 일부를 핵무기 개발과 2006년 10월 단행한 핵실험에 썼으며 일부는 플루토늄 상태로 남아있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핵무기 제조를 위한 무기급 플루토늄의 총량을 놓고 북한은 30kg 정도를, 미국은 50kg 이상을 주장해 왔다.

▽6자회담 다음 달 초 재개될 듯=성 김 과장의 이번 방북 협의를 끝으로 북한은 조만간 북핵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에 핵 신고서를 제출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측은 북측이 검증에 필요한 자료를 제공했는지, 누락된 자료는 없는지를 분석할 시간이 필요해 북측의 핵 신고서 제출은 앞으로 1, 2주 걸릴 가능성이 높다.

성 김 과장이 건네받은 자료가 핵 신고서를 검증할 수 있는 기초자료라면 핵 신고서는 총괄적 자료다. 핵 신고서는 40∼50쪽 분량으로 여기에는 북한이 생산한 플루토늄의 사용처에 대한 내용도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도 신고서에는 △플루토늄 추출량 △플루토늄 추출 과정과 직결되는 핵 시설의 가동 일지 △핵 활동 관련 시설 목록 등이 담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성 김 과장의 방북 협의를 끝으로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에 핵 프로그램 신고서를 제출하면 중국은 6자회담 참가국들의 의견 수렴을 위해 북한이 제출한 신고서를 각국에 회람시키고 곧이어 6자회담 재개를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각국의 정상외교 등 일정을 감안하면 6자회담 재개 시점은 6월 초가 유력할 것이라고 외교 소식통들은 전했다. 차기 6자회담에서는 북한의 신고 내용을 검증하고 모니터링할 구체적인 방안과 다음 단계인 핵 폐기 일정이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 테러지원국 해제 어떻게=미국은 6자회담 재개 전까지 북한이 제출한 핵 관련 자료를 면밀히 검토하는 작업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북한으로부터 넘겨받은 핵 관련 문서가 북한 핵 프로그램에 대한 검증작업을 진행하는 기초자료로서 부족함이 없다고 판단될 경우 ‘상응조치’인 테러지원국 해제 등 다음 과정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다. 북한이 제출한 자료가 검증하는 데 충분할 경우 미 의회도 미 행정부의 방침에 반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이 테러지원국에서 해제되려면 의회 통보시점에서 45일이 지나야 한다. 따라서 북한이 테러지원국에서 해제되는 시점은 7월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미국이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북한을 삭제할 경우 24시간 안에 불능화 대상인 영변 원자로의 냉각탑을 폭파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훨씬 험난한 협상의 시작=6자회담이 핵 신고 단계를 넘어선다고 해도 이를 검증하고, 핵 폐기를 진행하는 것은 지금보다 훨씬 힘들 것이란 게 외교가의 공통된 예상이다. 핵 신고 문제가 마무리되더라도 검증에는 1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넘어야 할 산이 아직도 많은 것이 현실이다.

북한이 테러지원국에서 해제되고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가 레임덕에 들어가는 하반기에도 북한이 지금처럼 계속 협력할지는 미지수다.

또 북한이 문서로 신고한 내용을 정확하게 검증하기 위해서는 영변 원자로와 재처리 시설, 핵폐기물 저장소 등 핵심 시설을 직접 방문해 시료를 채취하고 북한 과학자와 면담을 하는 등 ‘현장검사’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북한 측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어야 한다. 한 외교 소식통은 “북한 군부의 협조를 얻어야 하는 것도 있어 어려운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전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이미 만들어진 핵 물질을 북한 밖으로 가져오고, 시설을 없애는 작업은 지금까지의 핵 프로그램 신고와는 비교할 수 없이 어려운 과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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