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간 묵살했던 ‘反기업 서술’ 개선의견 수용

  • 입력 2008년 5월 15일 02시 58분


《정부는 한국 근현대사 등 역사교과서와 함께 반기업적, 반시장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경제교과서도 6월까지 정부 기관과 위원회, 경제단체의 의견을 수렴한 뒤 전면 개정하기로 했다. 이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가 현행 경제교과서 중 편향적인 서술에 대해 끊임없이 지적함에 따라 학생들에게 기업의 경제 활동에 대한 합리적인 인식을 심어 주기 위한 것이다.》

‘대기업=부패, 저소득층=진보’ 등 곳곳에 논리왜곡

내달까지 수정-보완 요구 수렴… 내년 교과서에 반영

▽왜 고치려 하나=‘정치인 재벌기업 공직자의 부정부패 사례를 신문에서 찾아보고, 우리 사회의 부패 정도가 얼마나 심각한지 토의해 보자.’ ‘일반적으로 재산이 많은 계층과 나이든 세대는 보수적이며, 재산이 적은 계층과 젊은 세대는 진보적이다.’

이는 2007년 출간된 고교 사회교과서에 실린 내용이다.

자유주의연대는 지난해 3월 중고교 교과서 18권을 분석해 두 대목을 포함해 시장경제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 줄 수 있는 내용 16건을 수정해 달라고 교육과학기술부에 건의했다.

교과부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검토를 거쳐 4건을 개정하도록 권고했다. 평가원은 위의 내용이 특정 직업군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을 줄 수 있고, 계층과 이념의 관계를 기계적으로 인식할 가능성이 있어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대한상의가 2003년 10월 초중고교 사회 및 경제교과서 49권을 분석해 반기업 정서를 부추기는 내용 62건에 대해 개선 건의를 한 뒤로 재정경제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 한국은행 등도 사회 및 경제교과서에 대한 개선 의견을 교과부에 전달해 왔다.

2005년 10월에는 재경부와 전경련 등이 ‘경제계에 대한 편향적 시각과 반시장적 이념’을 기술한 442건에 대해 교과서 수정 요구를 했고, 2006년 1월에는 여의도연구소가 ‘기업의 과도한 책임과 친(親)노조 성향’을 기술한 31건의 항목을 수정해 달라고 건의했다.

2007년 3월에는 자유주의연대가 ‘자유주의 시장경제와 상충되고 세계화에 대한 왜곡’을 담고 있는 16건을, 같은 시기 대한상의는 미국 일본 등의 경제교과서와 비교해 시장의 실패가 강조된 내용 20건을 고쳐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이런 요구는 성장보다 분배를 중시한 노무현 정부 정책과 상충돼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난해 2월 교과부와 전경련이 5000만 원을 들여 공동 개발한 ‘차세대 경제교과서’는 학교 현장에 배포되지 못했다.

교과부는 노동계와 교원노조 등의 반발을 고려해 책자 뒷부분에 시장경제를 비판하는 내용의 읽기 자료를 덧붙였고, 이 과정에서 전경련 및 한국경제교육학회와 여러 차례 마찰을 빚기도 했다.

그러나 기업과 시장을 중시하는 새 정부를 맞아 경제단체들이 지금껏 반영되지 못한 교과서 개선 의견을 하나씩 내놓으면서 정부는 경제교과서 전면 재검토에 착수하기로 했다.

▽대한상의, 337건 수정 요구”=대한상의는 3월 초중고교 사회, 국사, 경제, 근현대사 등 4개 과목 교과서 60권을 분석해 반시장적, 반기업적 내용을 서술한 337건을 수정해 달라고 교과부에 건의했다.

이 건의안에 따르면 ‘지나친 경제활동의 자유가 계급 간 대립을 격화시킨다’ ‘경제 안정면에서 계획경제가 시장경제보다 우위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발전을 가로 막는다’ 등 편향적 시각을 내비친 부분이 97곳이었다.

또 ‘정보화가 진행될수록 실업이 증가한다’ ‘게임방이 세계화의 가장 상징적인 현장이다’ ‘자유무역으로 더 빈곤해질 수 있다’ 등 부정확한 서술이 160건에 이르렀다.

‘중소기업체 사장이 폐수 방류를 지시했다’ ‘남한 기업이 북한에 진출해 퇴폐풍조를 확산시켰다’ 등 부적절한 사례 언급도 22건이었다.

이 밖에 ‘시장문제 해결에 정부 개입보다 시민의 힘이 더 효과적’ ‘경제문제 등은 사회의 근본적인 개혁이 있어야 해결 가능’ 등 저자의 주관적 해석이 들어간 부분도 21건이었고, ‘쓰레기 강산’ 등 저속한 표현도 37건이나 됐다.

교과부는 이러한 의견들을 검토해 337건 가운데 절반가량을 수정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과부는 조만간 대한상의 관계자를 만나 수정 사항을 조율하고 10월까지 각 교과서 발행자에게 해당 내용의 수정을 권고할 방침이다.

또 교과서 수정을 요구하는 정부 기관 및 경제단체와 교과서 집필진 간의 협의를 통해 견해차를 보완한 적절한 서술방식을 찾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6월까지 수정의견 수렴=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전경련, 대한상의 등 34개 정부 기관과 위원회, 경제단체는 4월 제7차 ‘교육과정·교과서 발전협의회’를 열고 6월까지 기관별로 교과서 수정 및 보완 요구사항을 모아 교과부에 전달하기로 했다.

교과부는 전문기관의 검토를 거쳐 이들 요구사항을 2009학년도 교과서에 반영할 계획이다.

이 밖에 경제단체와 저작자, 집필자 간의 시각차를 줄이기 위한 합동세미나를 개최하고, 교과서 집필자들의 산업시찰 및 기업방문 기회를 제공해 현실 경제에 대한 이해를 넓히기로 했다.

합동세미나에서는 중고교생이 바람직한 기업관과 시장경제에 대한 호감을 가질 수 있도록 현행 교과서 내용을 공동 검토하고, 내용이나 서술방식에 의견차가 있을 경우 집필자와 해당 내용에 대해 집중적으로 협의한다는 계획이다.

또 이들 기관은 11월 제8차 발전협의회를 개최해 수정·보완 의견과 반영 결과에 대해 논의하고, 새로운 수정 의견을 다시 수렴하는 등 지속적인 교과서 보완 작업을 벌여 나갈 방침이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경제계 반응

“교과서 개선 요청 오면 적극참여”

양세영 전경련 사회협력본부장

煐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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