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대신 고개를 4번 숙였다. 발표를 시작하며 숙였고 특히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쇠고기 논란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한 뒤에 가장 깊이 숙였다.
통상 기자회견 뒤 일일이 기자들과 악수하던 이 대통령은 이날 담화문 발표 뒤 곧장 뒤편으로 퇴장했다. 취임 87일 만에 이 자리에 설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그의 복잡한 속내를 짐작하게 했다.
이날 담화문은 발표 직전까지 수정을 거듭했다고 한다. 류우익 대통령실장이 초안을 잡은 뒤 이 대통령, 박재완 정무수석비서관, 이동관 대변인 등 4명이 함께 읽으며 수정했다. 이후 류 실장이 다시 검토해 탈고했고, 발표 몇 시간 전에 이 대통령에게 건네졌다고 한다.
이들은 대국민 사과를 표현하기 위해 여러 표현을 놓고 의견을 주고받은 끝에 ‘송구’라는 단어를 골랐다. 한 관계자는 “‘유감’이란 표현을 채택하자는 말도 있었지만 너무 표현이 객관적이라 ‘송구’라는 표현을 택했다”고 전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담화문 발표 후 임채정 국회의장을 찾아 한미 FTA 비준동의안의 본회의 직권상정을 요청하는 것도 검토했으나 정치적 제스처로 보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취소했다.
앞서 이 대통령은 최근 다양한 채널을 통해 여·야·학계·시민단체 등 각계각층으로부터 지지도 재고와 국정운영 방안에 대한 의견을 수렴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여권 관계자는 “대통령 지지도가 20%대까지 떨어지자 대통령이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했으며 이들 의견은 실제 국정운영에 상당히 반영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국가정보원이 의원, 학자 등에게 연락해 의견을 물은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이 의견을 물으라고 지시한 대상 의원은 한나라당에 P, L, Y 의원 등이며 친이명박계, 친박근혜계, 중립 의원 등이 망라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야당인 통합민주당 의원에게도 의견을 물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중 일부 의원은 대운하 공사는 미루고 4대 강을 정비하는 것으로 정책 전환, 국민과의 소통 필요, 선거운동 때 실시했던 타운 미팅 재개, 친박 복당 등의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야 영수회담, 미국산 쇠고기 관련 협정문 명문화, 대운하 정책 전환, 담화문 발표, 국민과의 대화 등 연일 진행되고 있는 이 대통령의 ‘소통’ 행보는 그 같은 의견수렴의 산물이라는 분석이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이승헌 기자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