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4년 7월 제헌절을 맞아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서울 용산구 한남동 국회의장 공관을 방문했다.
초청자였던 김원기 전 의장은 이후 대통령의 공관 방문이 정례화되자 “대통령의 국회 존중의 상징적 사건”이라며 자랑스럽게 말하곤 한다.
국회의장은 국회의 1인자이며, 입법 사법 행정부의 수장인 3부요인 가운데 첫 자리를 지킨다. 국회는 개원 60돌(5월 31일)을 앞두고 국회의장의 바람직한 위상과 권한을 확립하기 위해 진통을 거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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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장이 함께한 영욕의 60년
헌정 60년 동안 국회가 겪은 풍상은 국회의장과 대통령의 관계에 잘 녹아 있다.
2개월간 제헌의회 의장을 지낸 뒤 취임한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는 국회를 존중하지 않았다. 1940년대 말 이 대통령과 경쟁관계에 있던 신익희 의장이 이끌던 1, 2대 국회(1948∼54년)가 잠시 경쟁적 관계를 유지했을 뿐이다.
서울대 안청시(정치학) 교수는 29일 “국회에서 선출된 이 대통령은 대통령 직선제를 통해 재선된 이후 국회 경시가 뚜렷해졌다”고 말했다.
이후 박정희 전두환 정부를 거치면서 국회는 대통령의 뜻에 눌려 행정부의 충실한 보조역할을 인내해야 했다. 한 전직 국회의장은 사석에서 “국회의장 비서실장조차 의장이 스스로 임명하지 못하던 시절이 불과 얼마 전까지 계속됐다”고 말했다.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2000년 출범한 16대 국회의 이만섭 박관용 의장은 탈(脫)행정부를 시도했다. 특히 2000년 선출된 이만섭 의장은 당내에서 동료 의원의 표결로 의장후보가 됐다. 이후 박관용(본회의 자유투표) 김원기(합의 추대) 임채정(당내 경선) 의장이 대통령과 무관하게 의장직에 오르는 관행이 정착됐다.
2002년 이만섭 의장 임기 말에 개정된 국회법은 국회의장이 소속 정당을 떠나 무소속으로 활동하도록 했다. 국회의장은 대통령보다는 오히려 여야의 대결과 합의에 의존하는 형식이 됐다.
○‘여야 합의’와 의장의 권한
2006∼2008년 의장을 지낸 임채정 전 의장은 국회법과 ‘여야 합의 존중’이라는 새로운 관행 사이에서 갈등했다. 이 시점 쟁점이 된 것은 여야의 견해가 엇갈리는 법안 및 임명동의안을 본회의에 직권 상정할지 여부였다. 국회법 76조는 ‘의사일정은 여야 합의를 따른다.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의장이 결정한다’며 의장의 권한을 명문화하고 있다.
전효숙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동의안, 한미 자유무역법안(FTA) 비준동의안이 관심의 초점이었다. 임 의장은 전 후보자 동의안은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비판 속에서도 상정을 거부했다. 그 반면 FTA 비준동의안은 한나라당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직권상정을 끝내 거부했다.
연세대 신명순 부총장은 “아직 국회의장의 중립이 100% 완성됐다고 보기 어렵다”면서도 “최근 국회의장이 의장을 마친 뒤에는 현역정치를 떠나는 관행이 만들어지고 있다. 은퇴를 앞둔 원로정치인의 공정한 운영이라는 관행이 일부 뿌리 내리기 시작한다는 점은 고무적이다”라고 평가했다.
○美 막강 권한, 英 존경받는 중간자
한국의 국회의장이 소속정당을 버리고, ‘여야 합의’를 존중하려 노력한다는 점에서 미국보다는 영국 하원의장과 흡사하다.
미국 하원의장은 하원 제1당의 1인자가 취임한다. 최근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민주당)이 “미국-콜롬비아 FTA 법안 처리는 무기 연기한다”고 선언한 것은 하원의장이 법안상정권을 독점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반면에 영국 의회는 하원의장의 정치적 중립이 유별날 정도다. 가령 보수당 의원이 하원의장에 오르더라도 당적은 계속 보유하지만, 철저히 중립을 지키는 관행이 오래 이어져 온 탓이다.
신 부총장은 “총선에서 자기 정당이 과반 의석을 잃더라도 영국 하원의장은 교체되지 않는 때도 있다”며 “야당은 여당 출신 하원의장의 지역구에는 공천을 하지 않아 자연스러운 재선을 돕는 일이 있을 정도로 의장의 권위를 존중한다”고 말했다.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