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국빈 방문에서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이끌어낸 뒤 30일 밤 늦게 귀국한 이명박 대통령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방중 성과와 무관하게 더욱 거세진 촛불집회와 장외투쟁을 선언한 야권의 압박, 여기에 고유가 등 갈수록 어려워지는 경제까지 겹친 상황에서 귀국 길이 편안할 이유가 없지 않겠느냐”고 전했다. 이런 이 대통령은 주말 대통령수식비서관회의 등을 거쳐 다양한 정국 돌파 시나리오를 검토해 이르면 다음주 초 발표할 예정이다. 청와대 참모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 대통령은 인적쇄신론을 포함해 국정 운영 시스템 정비와 고유가 등 민생 회복 대책 및 야권과의 대화 회복 등 이른바 ‘스리 트랙’ 해법을 염두에 두고 장고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1. 주요 인사 교체로 국정시스템 정비
靑 기능-인사 보강… 與 “장관 2, 3명 바꿔야”▼
이 대통령은 우선 인적 쇄신론을 포함한 국정 운영 시스템 개편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의 또 다른 핵심 관계자는 “쇠고기 수입 재개 관련 재협상은 고려 대상이 아니며 ‘이명박식’으로 국정 상황을 정상화시키겠다는 게 대통령의 의중”이라며 “정국을 주도할 동력을 잃지 않는 범위 내에서 청와대 기능 및 인사 보강 등 국정 시스템을 손볼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무, 민정 등에 대한 기능 개편 및 인적 개편이 우선적으로 검토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장관 고시 발표 이후에도 사그라지지 않는 촛불집회와 이와 맞물려 야당은 물론 여당 일각에서도 제기되고 있는 인적쇄신론이 흐지부지될 경우 국정 개편 요구가 끊이지 않을 것이라는 게 이 대통령 고민의 핵심이다.
청와대 핵심 참모들은 이 대통령의 의중이라며 “취임 100일도 되지 않아 국정 운영의 하드웨어를 바꾸는 것은 무리”라며 인적쇄신론에 부정적이지만, 최근 상황에 책임이 있는 주요 인사의 교체만큼 국정 운영 시스템 개편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카드가 없다는 게 이 대통령의 고민일 수밖에 없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정국의 암초로 여겨지는 정부 주요 인사들이 계속 언론에 노출되면 반대세력에게 ‘살아있는 표적’을 제공하는 셈”이라며 “소폭이라도 인적 쇄신을 하면 쇠고기 논란과 맞물려 생산되는 ‘이 대통령이 고집이 너무 세다’는 항간의 인식도 희석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18대 국회 개원과 함께 새로 출범한 홍준표 원내대표-임태희 정책위의장 등 여당 인사들도 직간접적으로 인적 개편을 요청하고 있어, 어느 때보다 여당의 협조가 절실한 이 대통령이 이들의 주장을 계속 묵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청와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등의 경질설이 끊이지 않는 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에서는 “인사는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기 때문에 무리하게 요구할 수는 없지만 현 상황에서 최소 2, 3명 안팎의 인적 쇄신은 청와대의 무난한 국정 운영을 위해 필수불가결하다는 게 중론”이라고 말하고 있다.
▼2. 고강도 민생회복책 통해 여론 반전
고유가-장바구니물가 추가대책 조기 발표▼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은 ‘경제 살리기’라는 대의명분에 걸맞은 강력한 민생 회복책을 전면에 내세워 여론 반전을 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대통령은 31일 대통령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해 최근 정부가 발표한 고유가 대책 중 미진한 대목을 점검하고 추가 대책의 내용과 발표 시기 등을 조율할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가 30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정부의 고유가 대책에 ‘미흡하다’ ‘경제 논리에 치우쳤다’며 추가 대책을 시사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29일 한승수 국무총리 주재로 정부가 발표한 민생 대책은 부처 간 합의가 이뤄진 사항만 발표된 것”이라며 “부처 간 이견이 있던 대책도 조속히 합의해 다음 주 초에는 공개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특히 청와대 일각에서는 일부 지역에서 휘발유가 L당 2000원 이상의 가격에 팔리는 상황에 대해 ‘민생형 민심 이반’의 가능성에 우려도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종 결정만 남은 것으로 알려진 공기업 민영화 프로그램의 발표 시기를 다음 달 말에서 당초 예정대로 다음 달 중순 경으로 앞당기는 것도 고려되고 있다. 쇠고기에 파묻힌 여론 시장에 또 다른 의제로 부각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새 정부 출범 초 이 대통령의 지시로 시작된 ‘50개 기본 품목에 대한 물가 관리’ 프로그램의 중간 점검도 시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민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밀가루 라면 등 기본 품목의 물가가 예상 이상으로 치솟다 보니 정부가 어떤 정책을 내놓아도 국민이 믿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3. 18대 개원 맞춰 對野정치력 회복
다양한 대화창구 마련 ‘불통’에서 ‘소통’으로▼
쇠고기 정국으로 사실상 중단 상태에 빠진 야당과의 대화 회복을 위한 각종 조치도 검토될 것으로 알려졌다. 비록 한나라당이 153석의 원내 과반 의석 정당이라 하더라도 일부 민감한 정책의 국회 처리 과정에서 여당의 이탈 표가 나올 수 있는 만큼 무난한 수준에서 야권과의 대화를 복원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이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부터 줄곧 강조한 ‘탈여의도’가 의도와는 다르게 정치 실종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 통합적 리더십의 여권 내 수요가 적지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이번 주말 정국 구상을 가다듬은 뒤 이르면 다음 달 3일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와의 정례 회동에서 정국 돌파 카드를 매듭지을 것으로 보인다. 여야 협상이 순조로우면 다음 달 5일 18대 국회 개원 연설에서 공개될 수도 있다. 이번 주말은 이 대통령에게 취임 후 가장 긴 주말이 될 듯하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