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대통령도 “국가신용등급 악영향” 우려
경제 지표가 악화되는 가운데 정치권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임태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의 ‘외환위기 조짐’ 발언에 대해서는 그 발언이 오히려 위기를 증폭시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여야가 당리당략의 관성에 매몰돼 정작 경제 위기 대처에는 뒷짐을 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명박 대통령은 12일 임 의장의 발언에 대해 “국가 신뢰 등급이 떨어질 수도 있다”며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미국과의 쇠고기 추가 협상으로 국제 시장에서 한국의 신인도가 흔들릴 수도 있는데, 임 의장의 발언을 빌미로 국제 신용평가회사가 한국의 신용 등급을 낮출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가 있었다”고 전했다.
여당 내에서도 ‘집권 여당의 정책책임자가 무책임한 발언을 했다’는 게 중론이다. 실제로 1998년 외환위기 같은 징후가 감지되는 상황이라면 정부와 대책 협의도 없이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반대로 실질적 대응이 불필요한 상황인데 그 같은 발언을 했다면 정국 전환을 위해 ‘경제 위기’를 제물로 삼은 것 아니냐는 게 비판의 요지다.
이한구 전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지금 대외 경제 여건이 굉장히 어려운 것은 맞다”면서도 “이런 상황은 ‘오일 쇼크’에 비유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재정경제부 출신의 이종구 의원은 “현 경제상황의 핵심은 물가”라고 말했다.
공기업 개혁과 각종 규제 완화 등 경제의 기초를 튼튼히 하는 문제에는 사안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여야의 정치력 부재로 논의조차 못하고 있다.
또 서민 가계의 부담을 줄이는 대책은 나오지만 야당이 국회 등원을 하지 않아 정책 시행을 위한 법 개정은 언제 이뤄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최근 정부와 여당이 내놓는 정책에서 경제를 살리려는 장기적인 관점은 빠져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유류세를 환급하고 이동통신요금을 깎아주는 정책에 대해 경제 전문가들은 “스태그플레이션(경제불황 속에 물가상승이 동시에 발생) 상황에서 인플레 부담은 재정이 아니라 소비자가 지도록 해야 하는데 정반대의 정책을 내놓고 있다”며 우려했다.
조성봉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위기의 조짐이 나타나는 상황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으려는 정치색 짙은 정책만 내놓을 게 아니라 장기 비전을 제시하는 근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