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전 부의장은 12일 오후 임태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을 서울 시내의 한 호텔에서 만나 몇 시간에 걸쳐 시국 전반에 대해 폭넓은 대화를 나눈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회동에서 인적 쇄신안에 대한 논의가 오갔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앞서 11일에도 이 전 부의장은 안경률, 공성진, 고흥길 등 친이명박계 재선급 이상 의원 10여 명을 만나 각종 현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이 자리에서 의원들은 “정국 수습을 위해 이 전 부의장이 역할을 해야 한다”고 건의했으나 이 전 부의장은 “국내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 전 부의장 등의 ‘권력 사유화’ 논란에 불을 붙인 정두언 의원 등 친이계 소장그룹은 이 전 부의장의 퇴진론까지 제기하고 나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정 의원은 최근 가까운 의원들에게 “박영준 비서관이 물러난 것으로 화풀이를 했으니 끝났다고 하는데 무슨 소리냐. 이상득 전 부의장이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김용태 의원이 12일 전했다. 정 의원은 또 “(인적 쇄신은) 끝을 볼 것”이라 말했다고 한다.
정 의원을 포함한 친이계 소장그룹은 대통령이 전면적 인적 쇄신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 전 부의장의 인사 개입은 또 다른 실패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용태 의원은 이날 “지금은 큰일을 위해선 자식도 죽이는 대의멸친(大義滅親)의 자세로 대(大)쇄신에 임해야 할 때”라며 “모든 인사는 형님(이상득)으로 통한다는 ‘만사형통(萬事兄通)’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패밀리 비즈니스가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강재섭 대표계로 분류되는 나경원 의원도 이날 “(이 전 부의장은) 당분간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당이나 대통령, 그리고 본인을 위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이 전 부의장은 이날 본보 기자와 만나 “나는 이미 물러나 있는 상태”라며 “나는 청와대나 내각의 인사에 지금도 그렇고 과거에도 전혀 관여한 적이 없다. 100%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