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떠나는 1기 靑참모들
“어제는 다른 수석비서관들을 면직시키는 연설문을 썼는데 오늘은 내가 떠나는 연설문을 써야 한다.”
이명박 정부의 1기(期) 청와대 참모진을 진두지휘하다가 117일 만에 청와대를 떠나는 불명예를 안게 된 류우익 대통령실장은 20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한동안 말문을 잊지 못하고 울먹였다.
이명박 대통령의 의중을 누구보다 정확히 꿰뚫는 복심(腹心)이자 사안에 따라 직언도 서슴지 않는 ‘2인자’로 불릴 만큼 막강했던 그는 결국 쇠고기 파문으로 분출된 ‘촛불민심’에 떠밀려 예기치 못한 ‘조기 전역’을 맞게 됐다.
류 실장이 이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한 것은 6일이지만 촛불집회가 본격화된 지난달 2일 이후 청와대에 대한 인적 쇄신 요구가 높아지면서 그는 여론의 집중 타깃이 됐다. 특히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에게서 이명박 정부의 인사파문을 야기한 핵심 인물 중 한 명으로 꼽힌 이후 그는 “이 대통령을 위해서는 어떤 희생도 감수하겠다”는 뜻을 밝혀 이미 마음을 비운 상태였다.
그는 초기 청와대의 ‘군기반장’ 역할을 자임하며 헌신적 복무자세를 강조해 왔지만 청와대 안팎의 소통 부재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인물로 꼽히면서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종종 괴로움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청와대는 이날 오전 류 실장 주재로 1기 마지막 수석비서관회의를 열어 한미 장관급 쇠고기 추가협상과 물류 정상화 방안 등을 논의했다.
이날 회의는 예상대로 시종 침울한 분위기에서 진행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자리에서 류 실장은 “그동안 수석들이 여러 가지로 애를 많이 썼다”고 격려한 뒤 “이 대통령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1기 참모진의 이임식은 이날 오후 영빈관에서 300여 명의 직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 자리에서 곽승준 국정기획수석은 “절대권력인 자유를 찾아 길을 나선다”는 말로 아쉬움을 표시했고, 김중수 경제수석은 ‘자기 일은 자기 머리로 해결하고, 남의 일은 나의 가슴을 써야 한다’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엘리너 루스벨트의 말로 이임사를 대신했다. 이들은 이임식이 끝난 뒤 청와대 관저에서 이 대통령과 만찬을 함께하며 작별의 시간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