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측 ‘버티기’에 파격적 ‘감성화법’까지 동원
이번 한미 쇠고기 추가 협상에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지켜내면서도 30개월 이상 쇠고기의 한국 반입 금지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다양한 외교적 전술이 동원됐다.
당초 협상 중 한 번 회담장을 박차고 나온 것으로 알려졌던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한 차례 더 서울행 비행기를 타려고 시도하는 ‘벼랑 끝 전술’을 구사했다고 밝혔다. 특히 미국 측에서 “도저히 한국 안을 받을 수 없다”고 버티자 그는 10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대규모 촛불 집회 사진을 보여주며 “이 사진이 과학으로 설명되느냐”고 압박했다고 한다.
청와대는 협상 기간에 당-정-청이 입체적으로 미 워싱턴 외교가를 ‘공략’하기 위해 5단계 실행 프로그램을 은밀히 가동했다고 22일 밝혔다.
우선 정부는 추가 협상을 위해 7일 이명박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 간 통화를 1단계 조치로 정했다. 2단계는 협상의 성격을 ‘재협상에 준하는 협의’에서 ‘추가 협상’으로 규정하고 당정의 대표단을 잇달아 미국에 파견한 것. 3단계는 이를 기반으로 김 본부장이 미국에서 공식 협상에 착수한 것이고 4단계는 미 무역대표부(USTR)와의 본격 협상이었다. 이 대통령이 19일 특별기자회견을 통해 “30개월 이상 쇠고기는 수입할 수 없다”고 못 박은 것은 5단계 조치였다는 설명이다.
특히 김병국 전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은 백악관 측에 “쇠고기 파문이 한미 전반의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며 협상 4원칙을 이끌어낸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4원칙은 △추가 협상이 한국 소비자의 신뢰가 회복되는 쪽으로 이뤄져야 하고 △한미 FTA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되며 △미국의 대선 기간 불거질 수 있는 관련업계 및 의회의 반발과 통상마찰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미국-타국 간 쇠고기 협상에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는 것 등이다.
이에 대해 미 행정부 사정에 정통한 워싱턴의 싱크탱크 관계자들은 “한미동맹 발전을 특별히 중시하는 부시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지난해 국제수역사무국(OIE)의 판정 이후 쇠고기 수출 정상화를 양자 무역외교의 주요 과제로 삼아온 부시 행정부가 일본 중국 등 다른 나라와의 협상에 불리한 선례를 만들 만큼 분명한 내용의 합의를 해준 데는 백악관의 의지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설명이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