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민주주의 시대에도 국가 지도자에게는 의식, 무의식중에 카리스마를 요구한다. 그러나 그리스 말로 ‘천부의 능력’이라 하는 카리스마를 타고난 지도자가 흔히 나타나는 건 아니다. 그것은 초인적 노력과 헌신을 필요로 하는 비일상적 예외적 상황을 통해 이따금 나타날 뿐이다. 전쟁이 그러한 예외적 상황의 보기이다.
지난 20세기 현대사에서 가장 흥미롭고 화려한 대(大)시대가 1960년대였다는 데엔 많은 사람이 동의한다. 우선 60년대는 국제정치의 주역들이 나라마다 드물게 보는 카리스마를 지닌 ‘거인’들이었다. 드골과 아데나워, 케네디와 브란트, 흐루쇼프와 마오쩌둥, 호찌민과 저우언라이, 박정희와 리콴유 등등. 이들에게 공통된 것은 거의 그들 모두가 세계대전과 조국전쟁을 싸우면서 나온 지도자라는 점이다.
리더십 하루아침에 이룰수 없다
전쟁과 같은 비상한 상황에서 비범한 지도자가 나온다면 평화시대의 일상적 세계에선 평범한 지도자밖에 나오지 않는다 해서 크게 한숨 쉬며 비탄할 필요는 없다. 그런 대가를 치러도 평화란 좋은 것이다.
물론 전장(戰場)에서 단련된 영웅도 하루아침에 국가의 정치지도자로 탄생하는 것은 아니다. 전쟁판과 정치판의 리더십은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1944년 파리의 개선문을 통해 망명지 영국에서 돌아온 개선장군 드골도 프랑스 제4공화국의 초대 총리로 추대됐으나 1년 만에 짐을 싸고 고향으로 내려가버렸다. 말로만 ‘무슨 노릇 못해먹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 점잖은 귀거래사를 남기고 실제로 낙향해버린 것이다. 그리고선 14년 동안 그는 대통령 중심제의 제5공화국을 준비했다.
드골보다 14년 연상인 아데나워는 이미 1920년대에 바이마르 공화국 총리로 추대됐으나 사양했다. 그는 비스마르크 이래 유럽의 동서를 그네 타듯 오락가락하는 베를린 정부의 대외정책을 반대하고 이미 제1차 세계대전 패전 후에 라인 강 좌안(左岸)을 분리해서 서독 공화국을 건설하려 한 ‘분리주의자’였다. 2차 대전 패전으로 독일이 동서로 분단되자 아데나워는 그의 꿈을 실현할 찬스가 왔음을 봤다. 그는 노구를 이끌고 14년 동안 서독과 서유럽의 통합이라는 그의 일대 비전을 실현해냈다.
이승만은 수십 년의 망명생활 내내 대통령 준비를 했다. 박정희의 리더십도 하루아침에 이뤄지진 않았다. 그도 처음에는 많이 흔들렸다. 그의 리더십은 18년 군부독재의 소산이었다. ‘40대 기수론’의 두 김 씨가 20년 넘어 대통령 준비를 한 것에 비하면 노무현 이명박은 그야말로 느닷없이 청와대에 입성했다. ‘대통령 노릇 못해먹을’ 수밖에…. 그리고 그건 앞으로 누가 나와도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다.
지도자 키우는 정부형태 찾아야
지도자로 태어난 사람은 없다. 게다가 반세기가 넘는 장기평화가 지속되고 있는 평범한 세계에 갑자기 천부의 카리스마를 지닌 불세출의 영웅이 백마를 타고 출현하지도 않을 것이다. 미국의 대통령, 프랑스의 대통령도 이젠 그만그만한 위인들이다. 우리만 특별히 인재의 빈곤을 땅을 치며 개탄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돌아보면 오히려 한국정치의 짧은 현대사에도 권력과 권한은 제한된 채로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재상감도 드물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그러한 인재들이 장기적으로 국가의 조타수가 되도록 맡길 수 있는 정부형태를 공부해 낼 수는 없는지…. 그래서 우리의 정치도 국민에게 희망과 자신을 주는 공부를 해줄 수는 없는지….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본보 객원大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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