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 신고 문제가 당초 시한이었던 ‘작년 말’을 넘긴 지 6개월 만에 매듭지어지게 됐다.
북한의 핵 프로그램 신고서 제출은 ‘2·13합의’에 따른 1단계(핵시설 폐쇄)와 2단계(핵시설 불능화 및 핵 신고)를 마무리 짓고 최종 3단계(핵 폐기)로 진입하는 ‘신호탄’이다. 지난해 ‘10·3합의’ 이후 8개월여 공전된 6자회담도 동력을 얻게 됐다.
그러나 신고 내용을 검증하는 데 최소한 1년 이상이 걸리는 데다, 북핵 문제의 핵심인 핵무기는 신고서에서 제외돼 앞으로의 핵 폐기 논의는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핵 신고서엔 무엇이 담겼나
최진수 주중 북한대사는 26일 오후 6시 30분(한국 시간) 중국 외교부를 방문해 우다웨이(武大偉) 외교부 부부장에게 신고서를 제출했다.
60쪽에 이르는 핵 신고서에는 1987년부터 북한이 생산한 플루토늄 총량과 사용처, 영변 원자로를 비롯한 핵 관련 시설 목록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앞으로 철저한 검증을 거쳐야 하지만 핵 신고는 북한이 핵무기의 원료인 플루토늄 생산량을 비롯해 자신들이 추진했던 핵 개발의 ‘과거사’를 고백했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핵무기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북핵 신고서 제출 직후 발표문을 통해 “북한이 핵무기 관련 상세 사항을 포함시키지 않은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외교 소식통은 “북한은 ‘핵무기 관련 세부사항은 신고할 시점이 아니며, 핵무기 포기 문제는 추후 협상을 통해 논의하자’는 완강한 방침을 고수함에 따라 핵무기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과 시리아와의 핵 협력 의혹은 4월 초 북-미 싱가포르 합의에 따라 미국이 우려를 제기하고 북한은 이를 반박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비공개 문건 형식으로 첨부된 것으로 전해졌다.
○급물살 타는 한반도 정세
북한의 핵 신고서 제출로 지난 9개월 동안 중단됐던 6자회담도 조만간 재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신고서 평가와 검증 체제 구축을 논의하기 위한 6자회담은 7월 초 재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어 7월 하순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6자 외교장관 회담이 개최될 가능성도 대두된다. 6자 외교장관 회담은 10·3합의에서 ‘적절한 시기에 베이징에서 개최된다’고 명시됐다. 그러나 ARF에 관련 당사국 외교장관이 모두 참석하는 만큼 이를 계기로 자연스럽게 회동이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8월 초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을 계기로 남북한과 미국의 고위급 접촉이 이뤄질지도 관심사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은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한다. 그러나 관련국 간의 고위급 접촉이 이뤄진다 하더라도 북측에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아니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나서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검증 과정은 산 넘어 산
하지만 북핵 3단계인 핵 폐기는 이제까지보다 더 길고 어려운 협상이 될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북한은 지금까지의 플루토늄 생산량에 대해 36∼37kg 정도라고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추정치(35∼60kg)에서 벗어나지는 않지만 일반적인 관측보다는 상당히 적은 양이어서 생산량 규모를 둘러싸고 검증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미국은 이미 북한이 신고서 검증에 적극 협력하지 않을 경우 테러지원국 해제가 원만하게 진행되지 않을 것임을 경고했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18일 헤리티지재단 연설에서 “테러지원국 해제 조치가 발효되기 전에 45일 동안 핵 신고의 정확성과 완전성을 검증하는데 이 기간에 북한의 협력 수준을 계속 평가하고 협력이 불충분하면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할 것”이라고 했다.
찰스 프리처드 전 대북특사가 “북한이 4월 이미 확보한 핵물질이나 핵무기는 폐기 대상이 아니라고 전해왔다”고 밝힌 것도 검증 범위를 놓고 논란이 있을 수 있음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UEP와 시리아 핵 협력 의혹 문제도 북-미 간 서둘러 봉합한 수준이어서 미 행정부가 교체되면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북한이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부시 행정부와 핵 폐기 협상을 어느 수준까지 진척시킬지도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