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내정자 3명중 2명 조각때도 거론된 인물
李대통령 “장관들 제대로 일해볼 기회 없었다”
“국민 기대감만 잔뜩 부풀려 놓고 상황이 변했다며 공수표를 던진 격이다.”
정권 초반에 이례적으로 국무총리와 국무위원 전원이 사의표명(6월 10일)을 한 지 27일 만에 결국 ‘용두사미(龍頭蛇尾)’로 마무리된 ‘7·7 개각’을 두고 야당은 물론이고 여권 일각에서도 이 같은 비판론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국민 눈높이에 맞추겠다’며 총리를 포함해 최소 중폭 개각 가능성을 대통령이 직접 시사했지만, 결과적으로 새 내각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18대 국회 원 구성 협상에 연계시키려는 민주당의 눈치만 보다가 또 다른 유형의 ‘파행 인사(人事)’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이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장관) 교체 폭이 크지 않아 기대에 못 미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 같은데, 쇠고기 파동 등으로 제대로 일해 볼 기회도 없었다”며 이해를 구하려 애썼다.
○ “국민 눈높이에 모자람 없도록”→“더 일할 수 있는 기회 줘야”
청와대는 6월 6일 대통령실장과 대통령수석비서관 전원이 사표를 낸 데 이어 10일 내각 전원이 사의를 표명하는 헌정사상 초유 카드로 쇠고기 정국 타개에 나섰다. 메시지는 분명했다. “기득권을 다 던질테니 민심도 정부를 이해해달라”는 것이었다.
청와대는 그 직후 후임 총리 물색에 나섰고 언론을 통해 자유선진당 심대평 대표, 강현욱 전 전북지사 등에 대한 민심을 탐색했다.
이 대통령은 6월 15일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와의 회동에서 인적 쇄신 의사를 구체화했다. 이 총재가 “이번에 모두 바꿈으로써 지난 100일과는 다른 정부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하자 이 대통령은 “국민의 눈높이를 충족해야 한다는 데 공감하며 국민의 정서를 충분히 고려해 (인적쇄신을) 하겠다”고 화답했다. 그러나 그 후 청와대 안팎에서는 난항을 겪는 민주당과의 18대 국회 원 구성 협상을 이유로 인선 폭이 줄어들 것이라는 관측이 흘러나왔다. 특히 6월 20일 대통령실 전면개편 이후 이 같은 ‘현실론’이 급속히 유포됐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민주당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등을 반드시 가져가겠다고 하는 상황에서 개각 폭을 넓히면 인사 청문회를 협상용 지렛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그때부터 팽배했다”고 전했다.
심대평 강현욱 등 후임 총리 후보를 물색했던 청와대도 그 즈음 “한 총리의 대안이 있느냐”며 분위기를 조성했고, 홍준표 원내대표 등 한나라당 지도부도 총리 유임론을 제기하며 거들었다.
결국 청와대는 이 같은 ‘냉각’ 과정을 거쳐 여야 새 지도부 인선이 마무리된 직후인 7일 “내각이 쇠고기 파동 등으로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지지 않았던 만큼 한 번 더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며 기존 입장을 뒤집어 소폭 개각을 단행했다.
○ 별로 달라진 게 없는 ‘회전문 개각’
7·7개각은 소폭인 데다 교체 부처도 한 달여 전부터 이미 알려져 국정 전반에 새 분위기를 불어넣기 어려울 듯하다는 것이 정치권 안팎의 중론이다.
특히 조각(組閣) 과정에서 거론되던 이른바 ‘올드 보이’를 기용해 전형적인 ‘회전문 인사’라는 지적도 낳고 있다.
조각 때부터 입각 0순위로 거론됐던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 장관 내정자는 이번 인사 검증을 거치면서 석연치 않은 대목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으나 전 의원 측이 “사실과 다르다”며 재검증을 요청한 끝에 별 문제가 없어 낙점된 것으로 알려졌다.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내정자도 처음부터 입각 대상으로 거론된 이 대통령의 정책 고문 중 한 명. 청와대는 당초 안 내정자가 아닌 제3의 인물을 검토했으나 검증에서 문제점이 나와 지난 주말부터 안 내정자가 급부상했다는 후문이다.
장태평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내정자는 정운천 현 장관이 호남 출신이기 때문에 무조건 동향(同鄕) 출신 후보자를 찾는 과정에서 발굴한 케이스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다소 무원칙한 인사 배경이 알려지면서 “강부자(강남에 사는 땅부자) 내각을 없애겠다며 김병국 전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 곽승준 대통령국정기획수석비서관을 내치면서 유인촌(재산 신고액 140억 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유임시키는 이유는 뭐냐”는 말도 여권 일각에서 나온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