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취임땐 “고환율로 성장” 공조
물가급등하자 강장관 “수정 필요”
환율주권론 굽히지 않은 최차관
환율 때문에 관직서 두번 물러나
청와대가 최중경 기획재정부 1차관을 경질하자 정치권은 물론이고 재정부 일부 공무원 사이에서도 ‘정치적 희생양이 됐다’는 반응이 나왔다. 물가 급등을 증폭시킨 고환율 정책의 책임을 강만수 장관 대신 최 차관이 진 ‘대리 경질’이라는 것이다.
반면 “총체적인 경제운용에 관한 책임이라면 장관이 져야 하겠지만 환율 정책은 최 차관이 총괄했고, 장관보다 훨씬 강경한 목소리를 내온 만큼 책임을 지는 것이 옳다”는 의견도 있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도 “실무적으로 환율에 대한 최종 책임자는 차관”이라고 말했다.
강 장관과 최 차관은 2월 말 취임 때부터 줄곧 ‘원-달러 환율 상승(원화가치는 하락)을 통해 경제성장률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원화가 너무 고평가돼 있으며 경상수지 개선을 위해 환율이 올라야 한다는 메시지를 시장에 일관되게 전달한 것.
두 사람의 공조는 4, 5월경 예상을 뛰어넘는 물가 급등으로 재정부 안팎에서 “고환율 정책을 수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강 장관은 물가를 소홀히 할 수 없는 만큼 환율 정책의 방향을 일부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유연하게 돌아섰다. 반면 최 차관은 “고유가로 국내 물가는 계속 오를 수밖에 없다. 이 상황에서 성장 정책마저 포기하면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주장을 계속 편 것. 이렇게 되자 강 장관이 최 차관을 배제한 채 환율 담당 국장에게 “기자들에게 환율정책의 변화를 시사하는 설명을 하라”고 지시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때쯤 “최 차관이 재정부에서 코너에 몰리고 있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이후 최 차관도 서서히 태도를 누그러뜨렸지만 지나치게 강경했던 환율 소신은 결국 이번 경질의 빌미가 됐다.
어쨌거나 강 장관의 유임으로 경제정책 방향은 당분간 현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뒤집어 생각하면 강 장관은 감세 등 이명박 정부의 경제철학을 상징하는 인물로 그가 교체될 경우 이른바 ‘MB노믹스’가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점도 유임 결정에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부하가 상사의 짐을 대신 졌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어 강 장관이 앞으로 조직 내에서 리더십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한편 재정부는 차관이 경질되면서 애매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한 관계자는 “경제가 이렇게 어려워진 것은 고유가 등 대외변수에 의한 것인데 차관에게 책임을 묻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환율은 국제수지 균형을 겨냥해야 하는 대외적 변수로 내부 지표인 경기나 물가의 조절 수단으로 쓰면 안 된다. 경기 진작이든 물가 안정이든 환율이 거시경제 조절 수단으로 쓰이는 순간 비극은 잉태되는 것”이라고 장차관을 싸잡아 비판했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