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가 아닌 이름을 거시오
대통령중심제의 특징 중 하나는 대통령의 말이나 이미지, 리더십 스타일 등 개인적 요소에 의해 정부나 정권 전체의 성격이 규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번 정부는 ‘이명박 정부’다. 그만큼 대통령의 개인적 요소가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점에서 이 정부는 초반부터 적잖은 리스크를 안게 됐다. 이 대통령은 경제성장을 통한 국민통합을 집권의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성장은 디플레이션의 위험에 직면했고, 통합은 첫인사부터 헝클어졌다. 두 달 넘게 계속된 ‘촛불’ 속에서 대통령의 권위와 리더십은 엉망이 됐고, 무엇보다 신뢰를 잃게 됐다는 점이 뼈아프다.
그러나 이 모든 책임을 대통령에게만 돌려서는 안 된다. 적어도 정부여당은 대통령 뒤로 숨을 수 없다. 하물며 ‘감동 정치’는 여당이 주동해야 한다. 그 중심에 여당대표가 있다. 박 대표는 대통령에게도 할 말은 하는 ‘꼿꼿 여당대표’가 되겠다고 했다. “옛날 모양으로 당이 대통령의 뜻을 따라 의중을 헤아리고 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했다. 그러나 ‘감동 정치’는 말로만 되는 게 아니다. 자리를 건다는 것만으로도 부족하다. 어차피 2년 임기의 대표가 자리를 건다고 해서 대단한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박희태 대표쯤 되면 이제 자신의 이름을 걸 수 있어야 한다. 그는 올해 일흔이다. 스물셋에 사법고시에 합격해 20년 넘게 검사 생활을 하고 13대부터 17대까지 5선(選) 국회의원을 했다. 민정당과 민자당의 최장수 대변인, 법무부 장관, 신한국당과 한나라당의 원내총무, 한나라당 최고위원, 대표권한대행에 국회부의장까지 지냈다. 비록 18대 총선을 앞두고 뜻밖의 공천 탈락으로 국회의장의 꿈을 접어야 했으나 원외이면서도 거대여당의 수장이 되는 저력을 발휘했다.
박 대표는 ‘양질(良質)의 보수 정치인’으로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는 합리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하기에 그의 화려한 이력도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누린 만큼 국가사회에 공헌했느냐는 이력과는 별개의 문제다. 이제 박 대표는 그것을 분명하게 보여줘야 한다. 자리가 아닌 ‘박희태’의 이름으로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는 데 투신(投身)해야 한다. 당-청 분리의 당헌 당규를 개정하는 일에 신경을 쓰기보다는 대통령제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권력의 집중화를 막는 데 힘써야 한다. 대통령의 독단을 비판하고 직언(直言)해야 한다. 여당 의견조차 무시하고 장관 대신 차관을 경질하는 식의 무리한 인사가 다시는 없게 해야 한다. 민심의 통로인 당의 의견을 청와대가 무시하면 자리가 아닌 이름을 걸고 싸워야 한다. 그래야 대통령도 살고 당도 산다. ‘감동 정치’는 그런 연후에야 입에 올릴 일이다.
장관 세 명에 대한 문책인사로 끝난 7·7 개각에서 그나마 건질 것이 있다면 한승수 국무총리의 위상 변화일 것이다. 그가 명실상부한 ‘책임 총리’가 될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적어도 ‘자원외교 총리’라는, 헌법에도 없는 궁색한 총리 신세에서는 벗어날 듯싶다.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마시오
한 총리의 이력은 박희태 대표에 견줄 것이 아니다. 서울대 교수 출신인 그는 노태우-김영삼-김대중 정부에서 상공부 장관, 경제부총리,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냈으며 주미대사, 대통령비서실장, 국회의원도 거쳤다. 나이도 일흔둘이다. 그만한 이력과 경륜이면 ‘책임 총리’에 부족할 게 없을 것이다.
‘국무총리 한승수’는 이제, 이력이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나라와 국민에게서 받은 영광에 답해야 한다. 헌법이 부여한 총리의 권한을 당당하게 행사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대통령을 돕고 나라를 살리는 길이다. 대통령이 요구하는 역할이나 하면서 자리보전을 하려 한다면 빛나는 이력이 부끄럽지 않겠는가. 이름이 욕되지 않겠는가.
전진우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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