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객들 “해안 가지 말라는 경고 없었다”

  • 입력 2008년 7월 12일 03시 00분


숨진 박씨 전날밤 일행에 “해변서 일출 보고 싶다”

아들 “침착하신 어머니가 이런 변을… 못믿겠다”

“규정 위반하고 다닐 성격 아닌데…” 이웃들도 충격

현대아산, 취재진에 관광객 하차 장소 거짓 통보

“일출이 보고 싶다.”

금강산 여행길에 올랐다가 11일 새벽 북한군 초병의 총격으로 숨진 박왕자(53·여) 씨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박 씨는 10일 밤 금강산 특구 내 비치호텔 201호에서 잠들기 직전 함께 간 중학교 동창에게 “해변에서 일출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다음 날 아침 싸늘한 주검으로 나타났다.

일행 A 씨는 경찰 조사에서 “11일 오전 5시 10분경에 눈을 떠 보니 박 씨가 자리에 없었다. 박 씨가 ‘해변에 나가보고 싶다’고 한 말이 생각나 해돋이를 보러 간 줄로만 알았다”고 말했다. 또 A 씨는 “오전 7시 반까지 박 씨가 돌아오지 않아 현대아산 측에 신고했고 9시 20분쯤 박 씨가 목숨을 잃었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전했다.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박 씨는 중학교 동창 3명, 사회에서 알게 된 친구 1명 등 4명의 일행과 금강산으로 여행을 떠난 평범한 주부였다. 평소 호기심이 많았고 등산을 즐겼다고 한다. 금강산 여행에서도 산행을 할 때는 앞 팀을 따라잡을 정도였다.

사망 소식이 알려진 이날 박 씨의 서울 노원구 상계동 J아파트 앞은 취재진과 이웃 주민들로 북적였다.

박 씨는 이곳에서 전직 경찰관인 남편 방모(53) 씨와 전역 후 복학을 준비하고 있는 대학생 외아들(23)과 함께 살고 있었다. 아들 방 씨는 “침착하신 분이 이런 일을 당하시다니 믿을 수 없다. 정말 오랜만에 떠난 여행이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박 씨는 20년 전부터 상계동에 살아 이웃들과 친분도 두터웠다. 박 씨의 사망 소식을 전해들은 이웃들은 “평소 조용한 성격에 이웃 주민과도 큰 다툼 없이 지내왔다”며 “(규정을 위반하고) 돌아다닐 성격은 아닌데 사망 소식이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평소 절친했다던 아파트 주민 채영순(51) 씨는 “매우 착한 사람이었는데, 박 씨의 평소 성격으로는 혼자 북한군 지대에 들어갔다는 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고 의아해했다.

박 씨의 시신은 이날 오후 2시 10분경 강원 속초시 속초병원에 도착했다. 병원 장례식장 관계자는 “처음에는 익사한 시신이라고 들었는데 검안 과정에서 익사체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시신은 작은 관통 자국을 제외하곤 생각했던 것보다 깨끗했고 표정도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아니었다”고 전했다.

육안 검안은 오후 3시경 서명석 병원장과 경찰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시작됐다. 서 원장은 “등 뒤에서 날아온 탄환 때문에 폐 속에 혈액이 고여 호흡곤란 및 과다출혈이 있었던 걸로 보인다”고 사인을 설명했다.

박 씨의 시신은 오후 10시 반경 서울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옮겨져 부검에 들어갔다. 남편과 아들 등 박 씨의 유족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부검실 앞을 지켰다. 남편 방 씨는 “착잡하다”며 고개를 숙인 채 말을 잇지 못했다.

한편 이날 금강산에서 속초시로 나온 관광객들은 현대아산이 섭외한 관광버스를 타고 서울의 강북과 강남으로 나눠 이동했다. 오후 7시 반경 서울에 도착한 동행객들은 “피격 장소인 해안에 가지 말라는 경고를 한 번도 듣지 못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서울 송파구 잠실 종합운동장 앞에 도착한 여행객 권모(55) 씨는 “가이드나 정부 관계자 어느 누구도 우리에게 그쪽으로 들어가선 안 된다는 경고를 한 번도 해주지 않았다”며 “오전 4시에 해안으로 갔다는 게 이상하긴 하지만 어쨌든 그런 주의사항은 미리 얘기해줬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동행한 여행객들은 “박 씨가 출발 당일인 9일부터 운이 나빴던 것 같다”고 전하기도 했다. 한 여행객은 “박 씨가 출발 예정 시간을 넘기도록 오지 않아 길가에 버스를 대기시켜 놓고 30분간 기다렸다. 박 씨가 지하철에서 지갑을 잃어버려 늦었다고 했다”며 안타까워했다.

한편 서울 광화문 인근으로 여행객을 태우고 온 버스는 당초 새문안교회 앞에서 관광객을 내려 줄 예정이었지만 취재진을 피해 종로 보신각으로 돌아가 승객들을 하차시켜 언론에 잘못된 정보를 제공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속초=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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