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간 대화 단절속 北 ‘박씨 규칙위반’ 강변할 듯
국제사회 호소 - 교류 재검토 카드도 실효성 의문
재계 “안전보장 확실히 안되면 대북투자 어려워”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53) 씨 총격 사망 사건에 대해 정부는 신속하게 ‘진상규명’과 ‘상응하는 조치’라는 강수를 들고 나왔다.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 여성의 등 뒤에서 총을 쏜 행위에 충격을 받은 국내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북한이 순순히 협조할 가능성이 높지 않고 북한이 응하지 않을 경우 대응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는 것이 문제다. 당국 간 관계 단절 속에서도 활발하게 전개돼 온 경협 등 남북 민간 교류 협력 사업도 위축이 불가피하다.
▽정부의 대응 의지에도 북한 협조 미지수=이번 사태에 대한 정부 당국의 대책은 크게 세 갈래다. 우선 북한과 함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것이고 진상 규명에 따라 북한에 합당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이다. 또 금강산 관광을 12일부터 잠정 중단한 것은 이런 의지를 북한에 천명하기 위한 상징적이자 실질적인 조치로 이해된다.
정부로서는 이번 사건으로 국민의 대북 감정이 심각하게 악화됐다는 점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당장 여당인 한나라당은 11일 “북한 측 대응은 신중하지 못한 처사”라며 “심히 유감스럽고 납득하기도 어렵다”는 견해를 밝혔다.
한나라당 조윤선 대변인은 “금강산 관광이 남북교류의 중요한 장이 되고 있지만 우리 관광객의 안전과 보호가 최우선적으로 확보돼야 한다”면서 “정부는 사건에 대해 면밀한 조사와 검증을 하고 이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철저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정부의 대응이 효과를 나타낼지는 미지수다. 3월 27일 개성공단의 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경협사무소)에서 우리 측 당국자 11명이 철수한 이후 남북 당국 간 대화가 단절된 상황이다.
정부는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전통문을 보내기로 했지만 북한이 받아들일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북한은 2002년 6월 서해교전으로 한국의 대북 감정이 악화되자 잘못을 시인하며 국면을 전환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경우 박 씨의 ‘규칙 위반’에 대한 대응이라는 명분을 쥐고 있다는 점이 당시와 다르다.
북한대학원대 양무진 교수는 “한국 정부가 금강산 관광을 중단한 것은 여론과 우리 측 관광객들의 신변 안전을 위한 당연한 조치이지만 이 때문에 진상 규명을 위한 북측과의 접촉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북한이 진상 규명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북한에 공식 항의하고 국제기구 등에 진상을 알리는 동시에 민간교류 등에 대한 재검토를 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조치가 북한 정부를 현실적으로 압박할 수단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대북 민간 교류 협력사업 위기=이번 사건은 당분간 관광과 경협, 인도적 지원 등 남북 민간 교류 협력 사업에도 적지 않은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정부가 당장 이날부터 금강산 관광을 잠정 중단하기로 하는 등 현대아산의 대북 관광사업은 치명타를 입게 됐다.
현대아산은 올해 상반기(1∼6월)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금강산 관광객 19만 명과 개성 관광객 6만 명을 유치하면서 기존 목표보다 20% 이상 초과 달성해 분위기가 고조된 상황이었다. 현대아산은 이런 분위기가 이어지면 올해 금강산 관광객 수가 목표인 40만 명을 초과할 것으로 낙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사고로 금강산 관광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될 수밖에 없어 관광이 재개된다 해도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현대아산은 또 이달 말 내금강 비로봉을 개방할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이것마저도 여의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고의 여파가 개성공단 등 각종 남북 경협사업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현 정부 들어 전반적으로 남북 경협사업에 대한 재검토가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이번 사건이 발생했다”며 “사건 진상 조사 결과 및 북측의 공식 사과 여부 등에 따라 파장이 크게 달라지겠지만 일정 기간 냉각기는 불가피해 보인다”고 말했다.
경제단체 관계자는 “앞으로 북측의 확실한 신변 및 투자 안전 보장조치가 없으면 기업들의 대북 투자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대북 인도적 지원 단체 관계자는 “이명박 대통령이 6·15와 10·4선언 이행에 대한 협의 가능성을 밝혀 남북관계가 풀릴 것으로 기대했는데 이번 사건으로 당분간 대북 지원 사업을 공개적으로 진행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