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랭한 남북관계-북핵문제 얽힌 때 돌출 악재
靑관계자 “남북대화 제안하는 날 터져서 난감”
11일 새벽 금강산 관광특구에서 남측 관광객 박왕자 씨가 북한군에게 피격 사망한 사건 외에도 금강산에서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총격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1998년 대북 관광이 시작된 이래 금강산에선 북측이 규정 위반을 이유로 남측 관광객을 억류하거나 관광객들이 부상하는 안전사고가 잇따랐다.
이번에 사망한 박 씨를 포함해 지금까지 금강산관광 도중 사고나 지병으로 숨진 관광객은 23명에 달한다.
김대중 정부 때인 1999년 6월 금강산 관광객 민영미(당시 36세·주부) 씨는 북한 여자 관리원에게 ‘귀순공작’을 했다는 이유로 북측 출입국관리소로 연행돼 조사를 받은 뒤 억류됐다가 11일 만에 풀려났다. 민 씨는 당시 여직원에게 “귀순자들이 남측에서 잘산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건으로 금강산 관광객들에 대한 허술한 신변안전 보호조치에 따가운 비난 여론이 쏟아지기도 했다.
북한은 금강산관광 개시 전에 “관광객들이 정탐행위를 하거나 공화국을 반대하는 행위를 했을 경우 공화국 법에 따라 처리한다”는 관광 세칙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김대중 정부는 이를 북측과 적절한 협의도 없이 그대로 받아들였다.
2005년 12월에는 현대아산 협력회사 직원이 금강산 인근 해금강호텔 앞 도로에서 차를 몰다 교통사고를 내 북한군 초병을 숨지게 했다. 이로 인해 북측에 한 달 여간 억류됐다가 40만 달러의 보상금을 내고 겨우 풀려났다.
지난해 7월에는 금강산 만물상에서 관광버스가 전복해 남측 관광객 6명이 부상했고 3개월 뒤인 10월에는 구룡폭포 인근 무룡교의 철제 다리가 끊어지는 바람에 관광객 24명이 추락해 3명이 크게 다쳤다.
또 한나라당 차명진 의원은 2006년 9월 북한에 연탄아궁이를 지원하는 민간단체 ‘새천년생명운동’ 자문위원으로 관광객 900여 명과 금강산에 갔다가 북한군 10여 명에게 2시간 동안 억류되기도 했다.
한편 청와대와 정부는 얼어붙은 남북 관계와 북핵 문제를 둘러싼 미묘한 시기에 ‘대형 돌출 악재’가 터지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대통령이 쇠고기 정국을 넘어 건강한 남북대화를 제안하는 날 불상사가 터져 나와 난감할 따름”이라며 “그저 정치적으로 ‘액땜’했다고 생각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이번 사건이 최근 남북관계가 얼어붙은 가운데 발생했다는 점에서 북측의 주장대로 단순한 우발적 사고로 예단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남북 관계의 주요 고비 때마다 북측의 오비이락(烏飛梨落)식 도발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김현수기자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