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장 통보에 합동조사도 거부… ‘짜맞추기’ 의혹 확산
■ ‘피격의 진실’ 커지는 미스터리
금강산 관광객 총격 사망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총을 쏜 북한의 관련자들만이 알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한국 정부의 진상조사단 방북을 거부하며 진실규명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태세다. 또 폐쇄회로(CC)TV에 찍힌 내용도 공개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북측 주장의 ‘신빙성’은 진실에 접근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북한은 이미 피해자 박왕자(53) 씨의 동선(動線)에 대한 자신들의 진술을 번복했다. 11일 현대아산에는 “박 씨가 초소인 기생바위까지 접근했다”고 했다가 12일엔 “우리 군사통제구역 깊이까지 침범했다”고 얼버무렸다.
최근 새로 제기된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은 총격 시간에 대해서도 뭔가 숨기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은 그 진실에 대해 말할 의무가 있다.
▽북한, 총격 시간 말 바꾸기=북한은 사건 당일인 11일 오전 9시 20분 현대아산에 사건을 최초로 통보했다. 현대아산이 이를 토대로 통일부에 보고한 최초의 ‘사고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발포 시간은 오전 5시”라고 밝혔다.
그러나 북한 명승지종합개발지도국은 12일 오후 7시 대변인 명의의 담화에서 발포 시간을 10분 앞당긴다. 담화는 “남조선 관광객이 금강산에 왔다가 오전 4시 50분경 우리 군인의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고 공식적으로 설명했다.
이 때문에 북측이 날이 밝은 뒤 비무장 관광객을 쏜 것에 대한 국제적 비난을 우려해 발포 시간을 일출 전으로 조금이라도 앞당기려고 ‘사건 짜맞추기’를 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총격 시간 더 늦었을 수도=14일 새로운 한국 측 목격자의 진술에 따르면 총격 시간이 이보다 최고 30분가량 더 늦었을 수 있다.
관광객 이모 씨는 SBS와의 인터뷰에서 사건 당일 오전 5시가 훨씬 지난 뒤 총성이 들렸다고 말했다.
이 씨는 “오전 5시에 정확하게 해금강호텔을 나왔다. 산책을 하고 다시 밑으로 내려와서 (총소리를 들은) 시간이 (5시) 15분에서 20분 사이”라며 “환하게 밝았다. 아무 데나 다 쳐다볼 수 있을 정도였다”고 밝혔다.
목격자인 경북대 사학과 2학년 이인복(23) 씨도 13일 한겨레신문에 보낸 글을 통해 “동이 틀 무렵 하늘이 좀 붉은 상태에서 여자가 지나갔다”며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방송소리, 총소리, 비명소리가 들렸다”고 말했다.
이어 이 씨는 “이후 해가 산 위로 오른 것은 아니지만 날이 거의 밝았고 이상하다 느꼈기에 사고 현장 쪽으로 걸어갔다”고 말했다.
한국천문연구원에 따르면 박 씨가 사망한 11일 금강산의 일출 시간은 오전 5시 11분경이다.
두 목격자의 증언이 맞는다면 북한군은 일출 이후거나 일출 전이라도 박명(薄明)시간(해는 뜨지 않았지만 상당히 밝아 야외에서 활동할 수 있는 시간으로 대략 일출 30분 전)이라 박 씨를 충분히 알아 볼 수 있었는데도 총을 쏘았다는 얘기다.
▽사망 후 4시간의 공백도 의심스러운 대목=사건 당일 북측이 박 씨의 사망 사실을 뒤늦게 우리 측에 알려온 것을 두고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북측은 박 씨가 살해된 지 4시간 30분(북측 주장 총격 시간 기준)이 지난 오전 9시 20분에야 이를 현대아산 측에 알렸다. 이 시간 동안 과연 어떤 논의가 있었는지 한국은 합동조사를 요구하고 있으나 북측은 거부하고 있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