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때 가져간 대통령기록물을 반납하겠다고 16일 밝혔다. 청와대는 ‘다행’이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불법 반출 관련자에 대한 검찰 고발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4시 30분경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이명박 대통령께 드리는 편지’라는 제목의 원고지 5장 분량 글을 통해 “기록은 국가기록원에 돌려 드리겠다”면서 “가지러 오겠다고 하면 그렇게 하고 보내달라고 하면 그렇게 하겠다”고 밝혔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 대통령은 반환하겠다는 보고를 받은 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에 어긋남이 없도록 처리하고 국가기록원 측은 가능한 범위 내에서 편의를 제공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기록물 보고 싶을 때 천리 길 달려가야 하나’=노 전 대통령은 편지에서 “사리와 법리를 가지고 다투거나 열람권을 보장받기 위해 협상이라도 해보고 싶은 생각이었다. 그래서 버텼으나 이미 퇴직한 비서관, 행정관 7, 8명을 고발하겠다고 하는 마당이니 내가 어떻게 더 버티겠느냐”고 반납 결정 배경을 설명했다.
또 그는 “모두 내가 지시해서 생겨난 일이니 설사 법적 절차에 들어가더라도 내가 감당하면 될 것으로 생각했다”며 “나에게 책임을 묻되 힘없는 실무자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일은 없도록 해 달라”고 당부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 대통령의) ‘전직 대통령은 내가 잘 모시겠다’는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한 만큼 지금의 궁색한 내 처지가 도저히 실감이 나지 않는다”면서 “내가 이명박 대통령을 오해해도 크게 오해한 것 같다”고 불편한 속내를 내비쳤다.
이어 노 전 대통령은 “기록을 보고 싶을 때마다 전직 대통령이 천리 길을 달려 국가기록원으로 가야 하느냐”며 “그렇게 하는 것이 정보화시대에 맞는 열람의 방법이냐. 그렇게 하는 것이 전직 대통령 문화에 맞는 방법이냐”고 물었다.
그는 “내가 볼 수 있게 되어 있는 나의 국정 기록을 내가 보는 것이 왜 그렇게 못마땅한 것이냐”며 “공작에는 밝으나 정치를 모르는 참모들이 쓴 정치소설은 전혀 근거 없는 공상소설이다. 그리고 그런 일이 기록에 달려 있는 것은 더욱 아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우리 경제가 진짜 위기라는 글들은 읽고 계시냐”며 “참여정부 시절의 경제를 ‘파탄’이라고 불렀던 사람들이 지금 이 위기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지금은 대통령의 참모들이 전직 대통령과 정치게임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잘 알고 계시리라 믿는다”고 쓴소리를 했다.
▽‘고발 안 하면 직무유기’=불법 반출 행위에 대한 사법처리 여부와 관련해 청와대 관계자는 “현행법상 노 전 대통령 스스로 위법임을 인정한 상태에서 이명박 정부가 이를 묵인하는 것은 직무유기에 해당된다”면서 “국가기록원은 법과 원칙에 따라 관련자를 검찰에 고발하는 것이 불가피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형사소송법 234조 2항은 “공무원은 그 직무를 행함에 있어 범죄가 있다고 사료되는 때에는 고발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국가기록원 관계자는 “고발 여부는 현재로선 방침이 정해지지 않았으며 좀 더 검토해야 할 사항”이라면서 “일단 봉하마을에 어떤 자료가 어떤 형식으로 있는지 파악하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국가기록원은 17일 오전 노 전 대통령 측과 협의해 회수 일정과 범위를 결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천호선 전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 겸 청와대 대변인은 “국가기록원에 넘긴(것과 똑같은) 자료는 전부 반납하겠지만 노 전 대통령의 개인기록물은 제외될 수 있다”면서 사저에 남아 있는 e지원 서버에 관해서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데이터를 반납하는 것이지 시스템까지 줄 필요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김해=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
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