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원, 빈손 철수 → 盧측, 일방 봉인한 뒤 차로 성남 이송
국가기록원과 노무현 전 대통령 측이 18일 기록물 반환을 둘러싼 협의에 실패해 노 전 대통령 측이 야간에 적절한 호송 조치도 없이 경기 성남시까지 기록물을 옮기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노 전 대통령 측은 이날 오후 8시 반경 메인 서버에 담긴 하드디스크의 원본과 백업파일을 2대의 일반 차량에 실어 일방적으로 성남에 있는 대통령기록관으로 보냈다. 국가기록원은 일단 자료를 받았으나 정식 수령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정진철 국가기록원장과 조이현 학예연구관 등 6명은 이날 오후 2시 15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 사저를 방문해 노 전 대통령 측 이호철 전 민정수석 등 비서진과 자료 회수 문제를 협의했다. 3시간 넘게 줄다리기를 했지만 양측의 주장은 평행선을 그었다.
이 자리에서 양측은 당초 논란이 예상됐던 메인 서버 문제에 대해서는 “봉하마을 현지에 둔 채 자료만 가져간다”고 합의했다. 하지만 국정기록이 담긴 하드디스크의 처리 문제로 마찰을 빚었다.
정 원장은 이날 오후 5시 30분경 어두운 표정으로 사저를 나와 “(국가기록원 관리 아래) 복사본을 하나 더 만들어 가지 않으면 그동안 제기된 의혹을 해소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조 학예연구관은 “통상 전산자료를 옮길 때는 이송에 앞서 한 부를 복사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현재 있는 원본과 백업 파일이 이송 도중 손상될 경우 100% 복원이 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노 전 대통령 측은 “14개의 하드디스크와 컴퓨터 작동 과정에서 자동으로 생성되는 백업파일 14개 등 2질 28개의 하드디스크만 가져가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맞섰다.
김경수 비서관은 “기록원이 불필요한 요구를 하고 있다”며 “전체 하드디스크를 안전한 방법으로 봉인하고, 그 과정을 기록해서 (우리가) 직접 (성남의) 대통령기록관에 갖다 줄 것”이라고 말했다.
김 비서관과 김정호 전 기록관리비서관 등 7명은 이날 오후 8시 반 하드디스크 2질을 각각 다른 차량에 싣고 모두 3대의 차량을 이용해 봉하마을을 출발했다.
국가기밀에 해당하는 귀중한 기록물을 실은 이들 차량은 성남의 대통령기록관까지 약 400km의 거리를 경찰차 1대의 교통 에스코트만 받으며 야간에 이동해 교통사고나 탈취기도 등 만일의 사태에 적절히 대비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출발에 앞서 김 비서관은 “하드디스크에 일련번호를 매기고 프로그램 복원매뉴얼도 갖고 간다”며 “이 과정은 모두 동영상으로 촬영해 남길 것”이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양측이 협의를 벌이던 이날 오후 4시 반경 회의석상에 잠깐 나와 “문제를 복잡하게 풀지 말고 가져가든 말든 양단간에 결정을 내려 달라. (정부가) ‘대통령기록관 외에 기록물이 있는 것이 문제’라고 한 만큼 오늘 중 해결되도록 협의하라”고 말했다고 김 비서관이 전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자꾸 이렇게 (어긋나게) 가게 되면 정치적 문제로 몰려는 의도가 있지 않느냐는 의심이 들 수 있다”며 “이는 원칙의 문제인 만큼 정부의 인내심과 자제력을 시험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해=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