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조동호]나쁜, 미친 그리고 슬픈 北韓

  • 입력 2008년 7월 21일 02시 52분


몇 년 전 어느 외국 학자는 ‘나쁘고(bad) 미치고(mad) 슬프다(sad)’는 시각에서 북한을 바라보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악하지도 않고 미치지도 않았으며 불행한 나라가 아니라 나름대로 합리적인 국가라는 얘기다.

동의할 수 없다. 한반도를 바라보는 외국인의 눈에는 그렇게 보일지 몰라도 분단 조국을 살아가는 우리로선 절대 동의할 수 없다. 북한의 정책을 연구하는 외국 학자는 그렇게 분석할지 몰라도 분단 현실을 몸으로 느끼며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절대 수긍할 수 없다. 금강산 관광객의 피살 사건을 접하고서는 북한이야말로 ‘나쁘고, 미치고, 슬픈 국가’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정말 못됐다(bad). 비무장 관광객에게 총을 쏘다니. 그것도 정확히 조준해서. 사건이 일어난 시간엔 사람의 형태를 알아볼 수 있었다. 망원경으로 보았을 북한 초병은 그가 중년의 부인이며 관광 온 사람임을 단박에 알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방아쇠를 당긴 행위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허가된 관광지역을 다소 벗어났어도 실수일 뿐 정탐 목적이 아니었음은 북한 초병 스스로 잘 알았을 것이다. 결국 북한 당국의 지침이 그렇게 내려졌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아니라면 당국 이름으로 유감 표명을 하고 조사단도 받아들였어야 했다. ‘우리 민족끼리’를 내세우면서 이런 일을 벌이다니, 못되어도 한참 못된 정권이다.

관광객에 총질, 절대 수긍 못해

도저히 제정신이 아니다(mad). 전쟁 중이라도 비무장 민간인에게 총격을 가하지는 않는다. 관광 중인 평범한 주부를 사살하고도 남쪽보고 책임을 지라니 어떻게 이런 경우가 있을 수 있는가. 심지어 이번 일에 대해 “(남한이) 명백히 사과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엔 할 말이 없어진다.

이런 식으로 잘못을 덮어씌우는 행태는 북한의 상투적 수법이다. 2006년 5월 경의선 및 동해선 철도 시험운행을 하루 앞두고 일방적으로 행사를 취소한 뒤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를 거론하며 “책임은 전적으로 남측에 있다”고 억지를 부렸다.

2002년 6월 제2연평해전 당시에는 북한 경비정이 NLL을 침범하고 우리 해군 고속정에 선제 기습공격을 해 놓고서도 “남조선의 선제공격에 따른 자위적 조치”였다고 주장했다. 금강산 관광사업이 ‘애국사업’이라고 강조해 오다가 관광객에게 총질을 하고, 우리보고 용서를 빌라니, 도무지 제정신을 가진 정권이라고 할 수 없다.

너무도 슬픈 일이다(sad). 졸지에 부인과 어머니를 잃은 유가족과 친지로서는 이처럼 원통하고 분한 일이 없을 것이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사업을 유지한 현대아산에도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 갖은 비난을 받으면서 ‘햇볕정책의 옥동자’라며 금강산 관광사업에 정성을 쏟던 김대중 노무현 정부 관계자들에게도 이번 일은 충격적인 슬픔일 것이다.

모처럼 남북대화 재개 의지를 밝힌 이명박 정부 역시 허무와 좌절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남북의 화해와 협력을 바라는 국민 모두에게 이번 사건은 그야말로 슬프고도 슬픈 일이다. 남북관계에 이런 식으로 나설 수밖에 없고 이런 식으로 대처하려고 하는 북한 정권은 참으로 무능하고 안타깝고 불쌍하고 괘씸하고, 그래서 역설적이지만 너무도 슬픈 정권이다.

北본질 바로 알고 대북정책을

이번 일로 북한은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 민족이란 무엇인가. 남북 간에 화해와 협력이란 가능하지 않은가. 선의로써 선의를 기대하기란 김정일 정권에 대해서는 도무지 불가능한 일인가. 지난 20년간의 경협과 지원은 기껏 이런 비참한 사건을 만들기 위함이었던가. 우울하고도 참담한 질문이 많이 떠오른다.

이번 사건으로 한 가지가 분명해졌다. 북한 정권은 ‘bad, mad, and sad’라는 관점을 떠나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 도저히 합리적 기대를 가질 수 없다는 사실, 그것이 북한 정권의 본질이라는 사실이다. 원칙주의든 실용주의든, 햇볕정책이든 ‘비핵·개방 3000 구상’이든 북한의 본질에 접근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책 이외에 진정한 대북정책은 없다.

조동호 이화여대 교수·북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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