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후된 서남권지역, 서울 20년 먹여살릴 ‘기회의 땅’으로
《서울 영등포구와 구로구 일대의 준공업지역은 서울시내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이다. 영세 공장과 불량 주택이 밀집해 있는 이 지역이 향후 10년 안에 첨단 업무용 빌딩과 상업시설이 즐비한 ‘제2의 테헤란로’가 될 수 있을까. 서울시의 대답은 “그렇다”이다. 아니 “그렇게 되어야 한다”가 더 정확한 답변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이미지는 그동안 ‘개발’과는 거리가 있었다. 전임 서울시장이었던 이명박 대통령이 4년 임기 안에 청계천 개발과 서울광장 조성 등 굵직한 성과물을 내놓은 데 반해 오 시장은 ‘문화’나 ‘디자인’과 같은 무형의 가치에 더 관심을 쏟았다. 하지만 민선 4기 반환점을 앞둔 6월 하순 서울시는 ‘서남권 르네상스 프로젝트’란 대형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오 시장 취임 후 가장 큰 개발 계획이자 서울시가 서남권을 향해 내놓은 최초의 개발 계획이었다.》
구로 영등포 등 준공업지역 4개 거점축 개발
2015년까지 15조원 투입 첨단산업단지 조성
“기업 투자 유치하려면 수도권 규제 완화 절실”
오 시장은 “지역발전 사업 하면 뉴타운만을 생각하는데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지역발전”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이 계획을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 “주거환경 개선-경제활력 창출 도모”
서울 서남권에는 구로 영등포 강서 양천 금천 관악 동작 등 7개 구가 속해 있다.
이 지역은 1960, 70년대 한국 최대 공업지역인 ‘경인공업단지’의 한 축이었다. 하지만 산업 형태가 변하면서 80년대 이후 쇠퇴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영세 공장과 불량 주택이 밀집해 있다. 서울 전체 준공업지역 27.7km² 중 82.1%(22.7km²)가 서남권에 있다.
서울시는 이 지역을 ‘기회의 땅’으로 판단하고 있다. 현재 서울에는 개발을 위한 땅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준공업지역이 유일한 대안이다. 준공업지역이란 공업지역 가운데 경공업 또는 그 밖의 공업을 수용하되 주거 상업 업무 기능의 보완이 필요한 지역이다.
준공업지역을 개발해 향후 서울의 10∼20년을 먹여 살릴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것이 이 계획의 핵심이다.
서울시는 이 지역에서 경쟁력을 잃어버린 제조업을 대신해 지식·창조·문화산업 같은 신산업을 육성할 계획이다. 신산업에 종사할 인력들이 거주할 수 있도록 주거 환경도 대폭 개선한다. 이를 위해 2015년까지 15조 원의 예산을 투입한다.
서울시는 서남권을 4개의 거점 축으로 나눠 개발할 예정이다. 핵심은 영등포∼신도림∼가산∼시흥으로 이어지는 ‘신경제거점축’이다.
산업시설의 용지 비율은 현재 25%에서 20%로 줄인다. 정보기술(IT)이나 게임산업 같은 신산업이 제조업을 대신한다. 영등포와 신도림 일대에는 서울 디지털 콘텐츠 콤플렉스와 게임&멀티미디어 클러스터를 지어 게임 메카로 육성한다.
아울러 2013년까지 5조1600억 원을 들여 ‘한강르네상스경제거점축’의 중심지인 강서구 마곡지역을 첨단산업과 바이오메디컬허브로 개발한다.
오 시장은 “서남권 르네상스 프로젝트는 주거환경 개선과 경제 활력 창출을 동시에 도모하는 지역개발 모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첨단산업 경쟁력 활용 필요
하지만 사업 시행 속도는 중앙정부의 지원과 협력 여부에 달려 있다는 것이 서울시의 판단이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여러 경로를 통해 서울 등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 규제를 풀어줄 것을 정부에 요청해 왔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수도권정비계획법 제7조에 따른 과밀부담금이다. 서울시내에서는 대형 건축물(업무·복합 건축물은 2만5000m² 이상, 판매용 건축물은 1만5000m² 이상)을 짓거나 용도 변경을 할 때 표준건축비의 5∼10%를 과밀부담금으로 내야 한다.
전국을 통틀어 과밀부담금의 적용을 받는 지자체는 서울시가 유일하다. 1994년 이 제도 도입 후 올해 6월 말 현재 낸 과밀부담금 액수만 9200억여 원에 달한다. 민간 기업들이 서울에 대한 투자를 꺼릴 수밖에 없다.
또 현행 산업입지 및 개발에 관한 법에 따라 서울 시내에는 ‘첨단산업단지’를 지을 수 없게 되어 있다. 지식, 문화, IT 등 서울의 첨단산업 경쟁력이 타 지역보다 우월하지만 이를 활용하기가 쉽지 않다.
서울 시내에서 대학의 설립과 이전도 금지되어 있어 연구개발을 위한 산학협동 클러스터 조성에도 어려움이 있다.
이인근 도시계획국장은 “서울이 모든 것을 다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지방이 할 수 없는 것을 서울이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라며 “도쿄, 싱가포르, 홍콩, 베이징 등 세계의 대도시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먼저 서울의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준공업지역, IT중심 ‘제2 테헤란路’로 키워야”▼
신창호 창의시정연구본부장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신창호(사진) 창의시정연구본부장은 “세계 대다수 선진국은 수도나 대도시가 국가 경제 성장을 이끌고 있지만 서울만 세계적인 흐름에서 뒤처져 있다”고 말했다.
서울과 비슷한 양상을 보인 도시는 일본의 수도 도쿄. 일본 경제가 2.8% 성장하는 동안 도쿄는 1.0% 성장했다. 하지만 일본은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2007년 7월 수도권 규제 관련 법률을 폐지했다. 그 후 개발을 통한 도쿄의 변화는 괄목할 만하다.
신 본부장은 “수도권이 동북아의 경제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참여정부 때부터 나온 얘기”라며 “하지만 수도권에 대한 규제가 지금처럼 유지되는 한 서울과 우리나라의 국가 경쟁력은 점점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제조업이 아닌 지식·창조·문화 산업이 고(高)부가가치를 낳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서울은 정보기술(IT) 수준과 우수 인력 등 이 같은 신(新)산업이 발전하기에 좋은 토대를 갖추고 있지만 각종 수도권 규제가 이를 가로막고 있다.
신 본부장은 “IT나 게임산업 등은 기본적으로 대도시 산업”이라며 “서울 서남권의 준공업지역을 이 같은 용도로 잘 활용하면 회색빛 공업지역은 제2의 강남 테헤란로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수도권 규제로 인해 서울은 점점 베드타운으로 변하고 있다”며 “얼마 남지 않은 땅에 무조건 아파트를 짓는데 준공업지역을 산업과 주거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공간으로 만들지 않으면 서울의 미래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해외 도시재생사업 사례▼
“결론은 문화”… 스페인 빌바오 미술도시로 부활
쇠퇴하던 공업도시가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선진 문화도시나 신산업 중심 도시로 발돋움한 대표적인 예는 스페인의 빌바오와 이탈리아의 토리노다.
빌바오는 국내 지방자치단체장들의 해외 순방 필수 코스다. 양대웅 구로구청장을 비롯한 서울 서남권 자치구 디자인 체험단도 올해 4월 빌바오를 둘러봤다.
스페인 북부 비스카야 주의 주도(主都)인 빌바오 시는 구겐하임미술관의 도시로 잘 알려져 있다.
1850년대부터 조선, 철강업으로 번성한 빌바오는 1980년대 이들 산업이 쇠퇴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공장지대는 폐허가 됐고 실업률은 30%를 넘었다.
빌바오 시와 비스카야 주정부, 바스크 지방정부는 빌바오의 미래는 ‘문화도시’라고 결론 내렸다.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분원을 유치하자는 계획도 그 하나였다.
도시 전체가 미술 작품 같은 빌바오에는 구겐하임미술관뿐 아니라 스페인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산티아고 칼라트라바 씨가 설계한 수비수리 다리, 영국 출신 건축가 노먼 포스터 씨가 디자인한 지하철 역사, 일본 건축가 아라타 이소자키 씨가 만든 주상복합건물 등이 있다.
빌바오 시는 네르비온 강 양쪽에 남아 있는 공장 건물을 세계적인 건축물로 계속 리모델링하는 한편 장기적으로는 시의 일정 구역을 ‘스페인의 맨해튼’ 같은 금융중심지로 육성할 계획이다. 앞으로 빌바오를 문화와 금융 산업이 적절히 어우러진 도시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피아트의 도시’ 토리노도 1980년대 이후 제조업이 쇠퇴하자 정보기술(IT)이나 생명공학(BT), 의료산업 등 신산업을 대거 유치했다. 공장 터는 친환경 공원이나 쇼핑센터, 호텔과 컨벤션센터 등을 위한 공간으로 개발했다. 토리노는 2008년 세계디자인수도(WDC) 시범도시로 선정되는 등 산업과 디자인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도시로 평가받고 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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