긁어 부스럼?…금강산 국제공조 압박카드 미리 노출

  • 입력 2008년 7월 28일 02시 58분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을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제기해 국제사회의 여론을 업고 풀어보려던 정부의 시도가 오히려 한국의 외교력 미숙만을 부각시키고 말았다.

당초 목적은 제대로 달성하지 못한 채 오히려 이례적인 의장성명 수정으로 외교적 망신살만 뻗쳤다. 이 과정에서 외교부 등 관련 부처들에 내재한 구조적인 문제점들이 드러나면서 유명환 외교부 장관 사퇴 등 인적 쇄신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여론 막기 급급, 북한 대비 가능성 몰라=정부가 금강산 사건 해결을 위해 ‘국제 공조’ 카드를 내보인 것은 15일. 진상 규명을 위해 3박 4일 동안 방북했던 현대아산 윤만준 사장이 이날 오후 ‘빈손’으로 돌아온 상황에서 ‘국제 공조’는 화난 여론을 달래고 북한을 압박하는 카드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정부는 애초부터 ‘국제 공조’에 걸맞은 공격적인 제스처를 취할 계획은 아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외교부 당국자는 27일 “ARF 논의 내용에서 남북 대결양상은 피하고 싶어 금강산 문제에 관한 발언의 수위를 낮춰 ‘로 키(low-key)’로 하고 의장성명은 상황을 봐가면서 무리 없이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은 이미 금강산 사건이 터지기 전부터 한국 정부가 6·15 및 10·4 정상선언을 지키지 않는다고 국제사회에서 공론화할 조짐을 보였다. 북한은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3’ 회원국이 아니지만 21일부터 현지에 와 ‘작업’을 시작했다.

결국 ‘국제 공조를 통한 압박’ 카드를 미리 예상하고 치밀하게 맞대응을 준비한 북한에 정부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아세안 비중을 낮게 봤다=정부가 아세안 국가인 싱가포르가 다자외교를 주도하면서 복잡한 한반도 문제를 정치하게 이해하지 못했을 가능성을 간과한 것도 이번 사태의 원인(遠因)이랄 수 있다.

싱가포르 정부는 남북 관계에 대해 보수 정권(노태우 정부)의 성과인 남북기본합의서 등과 진보 정권(김대중 및 노무현)의 결실인 6·15 및 10·4 정상선언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겠다는 한국 정부의 원칙을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 당국자는 27일 “한국의 정권 교체를 싱가포르가 고려했다면 10·4 선언만을 인용하며 남북대화를 촉구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외교부 현지 대표단이 싱가포르의 이해 부족에 대비해 충실한 사전설명 노력이 부족했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렵게 됐다.

이런 문제는 이번 회의를 아세안 지역 외교를 다루는 외교부 남아시아대양주국이나 다자외교를 다루는 다자외교조약실 대신 북한과 미국 이슈를 다루는 북미국 라인이 주도하면서 증폭됐다는 분석도 있다.

▽한계 드러낸 외교안보라인 문책론=정부 여당 내에서도 “정부 외교력의 한계를 다시 한 번 드러냈다”는 비판이 나왔다. 야당은 “망신 외교”라며 유 장관 사퇴를 일제히 촉구했다.

여권의 한 핵심 관계자는 27일 “의장 성명을 뒤늦게 고쳐 외교 무대에서 결례를 하고 별다른 소득도 없었다. 한마디로 긁어 부스럼이 된 격”이라며 “정부 외교라인을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김유정 대변인은 “유 장관은 사건의 사실 관계를 국민 앞에 명확히 해명하고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대변인도 “정부가 최우선 과제인 금강산 문제까지 (결과적으로) 삭제하게 한 것은 묵과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영상 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박경모 기자


▲영상 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박경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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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박경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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