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지난주 갑자기 독도를 ‘한국령’에서 ‘주권 미지정’으로 재분류한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은 단순한 ‘기술적 변경’이라지만 그 배경이 뭔지 의구심만 낳고 있다. 더욱이 이번 조치를 되돌리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돼 한국의 ‘독도 외교’는 다시 암초에 부닥친 양상이다.
▽지금 와서 갑자기 왜?=미국이 31년 동안 별다른 수정 없이 놔두던 독도 영유권 표기를 왜 굳이 한일 간 이슈로 떠오른 시점에 서둘러 정리했는지에 대해 납득할 만한 설명은 없다.
현재까지 나온 미 국무부와 지명위원회(BGN)의 공식 설명은 “리앙쿠르 록스(Liancourt Rocks)를 표준 명칭으로 정한 1977년 결정에 부합하도록 데이터베이스를 정리했다”는 것. 중립적 명칭을 쓰기로 한 만큼 영유권 문제도 이에 맞추기로 했다는 해명인 셈이다.
주미 한국대사관 고위 관계자는 “일단 미국의 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관련 기관의 주요 당사자들과 계속적인 면담을 통해 추가로 알아보겠다”고만 말했다.
그는 “현재로서는 미국 정부가 독도에 대한 ‘주권 미지정’ 분류가 가져올 문제의 심각성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생긴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한국의 섣부른 대응이 자칫 외교적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는 고민을 내비쳤다.
BGN은 지리정보 관련 전문가와 기술관료 집단이어서 독자적인 정무적 판단을 내리는 곳은 아니기 때문에 어디선가 내려진 정치적 판단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과거 정부에서 BGN과의 연락 업무를 담당했던 한 관계자는 “BGN은 국무부나 국방부, 중앙정보국(CIA) 등 유관기관이 내리는 정책 판단을 보고 그에 맞춰 기술적 결정을 하는 곳”이라며 “영유권 변경은 좀 더 ‘윗선’의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번 조치는 미국의 기존 태도와도 배치되는 것이어서 이런 의구심을 키우고 있다.
미국은 한 나라가 실효적으로 지배하는 지역에 대해 해당 국가의 영유권을 인정하는 태도를 보여 왔다. 일본이 반환을 요구하는 북방 4개 섬을 ‘러시아령 쿠릴 열도’로, 중국과 다툼을 벌이는 댜오위(釣魚) 섬을 ‘일본령 센카쿠 열도’로 명시한 것이 그 사례다.
▽원상회복 가능할까?=일단 정부는 공식 외교채널을 통해 우선 BGN에 수정을 요청하는 한편 국무부에도 적극적인 협조 요청을 할 계획이다.
정부가 뒤늦게나마 ‘총력전’을 다짐하는 이유는 BGN의 결정이 미국 연방정부 내 지명 표기의 표준이 되기 때문에 미국 내 다른 기관 및 홈페이지의 독도 표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즉각적인 원상회복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분기마다 열리는 BGN 회의에 한국 정부가 이의를 제기하겠지만 한번 내린 결정을 번복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는 게 정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지리정보 공유는 문제없나?=BGN이 외국 지명에 대한 정보를 얻고 있는 미국 국립지리정보국(NGA)의 외국 지명 데이터베이스인 ‘지오넷 지명서버(GNS)’에는 외국 지명 참고기관으로 ‘National Geography Institute’가 ‘Korea(DPRK)’ 아래 올라 있다.
여기를 클릭하면 한국의 국토지리정보원 영문 홈페이지가 나온다. 한국 기관이 북한(DPRK) 소속으로 등록돼 있는 것. 이런 오류가 언제부터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이를 방치해 온 한국 정부의 허술한 외교를 드러내는 한 단면이 아닐 수 없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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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상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박경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