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을 물어야 할 부분이 있는 것은 맞다. 금강산 사건을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가져갔을 때 북한이 ‘10·4정상선언 지지’ 요구로 맞불을 놓으리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잘못이다. 정황상 그럴 개연성이 충분했으므로 사전에 여러 대안을 검토했어야 했다. 미국 정부가 독도를 ‘주권 미지정’ 지역으로 분류했음에도 이를 모르고 있었던 것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런 일을 하라고 외교통상부가 있고 주미대사관이 있는 것이다.
섣부른 ‘경질론’ 외교위기 더 깊게 할 수도
외교를 흔히 ‘총성 없는 전쟁’이라고 한다. 전쟁하듯 치밀한 전략과 전술을 바탕으로 조용한 가운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명박 정부의 외교가 되새겨야 할 점이 바로 이런 대목이다. 전략도 전술도 부족했고, 준비도 철저하지 못했다. 사건이 터졌을 때 대처하는 방식도 미숙했다. ‘아마추어’란 말을 들을 만하다.
이 대통령이 ‘실용 외교’를 기조로 한미동맹을 복원하고 한-미-일 삼각 우호체제를 공고히 하는데 외교의 역점을 둔 것은 옳은 방향이었다. 그것은 노무현 정부가 이념과 구도를 앞세워 한미, 한일 관계를 훼손한 데 대한 일종의 반작용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이렇다 할 실익을 챙긴 것도 없고, 그렇다고 한미 한일 관계가 확연히 좋아진 것도 아니다. 전략적 동맹관계로의 격상을 공언했던 미국과는 오히려 이전보다 서먹해졌다는 평가도 있다. 미래지향적 관계를 이끌겠다는 일본으로부터는 독도 문제로 뒤통수를 맞았다.
실용을 지나치게 강조해 상대방에게 잘못된 신호를 줬기 때문일 수도 있다. 상대방에게 자신의 패를 미리 다 보여준 셈이다. 우리가 선의(善意)로 대한다고 해서 상대방도 우리를 똑같이 대해줄 것으로 여기는 것은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이다.
이 대통령은 지금부터라도 외교의 기본원칙을 다시 세워야 한다. 큰 틀에서는 한미동맹을 확고히 하고 그 바탕 위에서 한일, 한중, 한-러 관계를 새롭게 모색해야 한다. 일부 좌파들의 지적처럼 자주(自主)를 앞세워 미국과 다시 대립각을 세우거나, 북한에 대해 퍼주기 식의 원칙 없는 포용정책으로 시종해서도 안 된다. 그렇게 하는 것은 한미동맹도 잃고, 국민의 지지도 잃는 악수(惡手)가 될 것이다.
그러면서도 독도처럼 양보할 수 없는 국익이 걸린 문제에 대해서는 단호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치밀하고도 조직적으로, 그리고 조용히 접근해야 한다. 필요하면 시스템을 정비하고 인력도 보강해야 한다. 때론 공식 루트보다 비공식 루트를 활용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도 있다. 독도외교야말로 관민(官民)이 함께 나서야 할 외교다.
지금 한국 외교가 직면한 도전과 위기는 좌파가 지적하는 그런 차원을 이미 넘어섰다. 주먹구구식, 임기응변식이 아닌 고도의 전략적 외교가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는 일관된 원칙을 가지고 당장 힘들더라도 이 고비를 극복해야 한다. 외교에도 공짜는 결코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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