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李정부 압박 ‘남남갈등 조장-경제지원 획득’ 포석
정부 “비준 거친 기본합의서가 더 중요하게 이행돼야”
정부는 북한이 9월 유엔 총회 등 국제사회에서 ‘6·15 및 10·4정상선언 이행’ 주장을 들고 나올 경우 남북기본합의서 등의 이행을 요구하는 것으로 맞대응하기로 했다.
정부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이어 이란 테헤란에서 열리고 있는 비동맹운동(NAM) 장관급 회의에도 당국자를 파견해 남북 간 합의의 이행 문제를 놓고 북한과 외교전을 펼쳤다.
▽북한이 유엔에서 도발하면 대응할 것=정부 고위 당국자는 29일 “북한이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6·15 및 10·4정상선언’만을 강조한다면 우리는 남북기본합의서 등 (남북이 이행을 협의해야 할) 다른 합의서도 있다고 주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북한이 9월 유엔 총회에 두 정상선언의 이행 주장을 들고 나와 한국을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북한이 결의안을 상정하면 우리는 기본합의서 등이 들어간 ‘수정 결의안’을 내 맞설 방침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11일 국회에서 “과거 남북 간에 합의한 7·4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비핵화공동선언, 6·15공동선언, 10·4정상선언을 어떻게 이행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 북측과 진지하게 협의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북한 주장 속내와 한국 대응 이유=북한이 최근 국제사회에서 6·15 및 10·4정상선언 이행 문제를 이슈화하는 것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한 약속을 지키라고 이명박 정부를 압박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를 통해 한국 내 친북세력을 결집시켜 ‘남남갈등’을 조장하고 노 전 대통령이 10·4선언을 통해 약속한 대규모 경제지원까지 받아 챙기겠다는 속셈인 것으로 분석된다.
과거 김일성 북한 주석은 남북 문제를 ‘다수결의 원칙’이 지배하는 유엔과 NAM 회의 등에 끌고 나가 ‘재미’를 봤다.
그러나 정부는 두 정상선언은 한반도 문제의 중요한 이슈들을 모두 포괄하지 못한다고 보고 있다. 남북 간에 가장 중요한 현안인 북한 핵문제 해결 등 비핵화에 대한 언급이 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6·15선언에는 상호불가침의 문제도 포함되지 않았다. 게다가 10·4선언 이행에 따른 한국 정부의 재정 부담이 천문학적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1991년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는 남북 간 모든 이슈를 포괄하고 있으며 양측의 총리가 서명하고 입법부 등이 비준하는 등 절차적 완결성을 갖췄기 때문에 두 정상선언보다 중요하게 이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의 ‘편파 주장’에 실력 행사=정부는 27일 개최한 NAM에 게스트 자격으로 오준 외교통상부 다자외교조약실장을 파견했다.
제3세계 국가들의 협의체로 118개 회원국이 참석한 이번 회의에서 정회원인 북한이 ARF에서와 같이 두 정상선언의 이행 문제를 들고 나올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정부 당국자는 “회원국들에 ‘한반도 문제에 대한 결의안에는 남북한의 입장이 균형 있게 반영돼야 한다’는 뜻을 전하고 있으며 많은 나라가 우리의 주장을 합리적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29일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따르면 베트남 정부는 최근 북한의 6·15 및 10·4정상선언 이행 의지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북한이 다자간 외교뿐만 아니라 양자 관계를 통해서도 이 문제를 이슈화하고 있다는 뜻이어서 당분간 남북 대화의 외교 이슈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 영상취재: 동아일보 사진부 박경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