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28일까지만 해도 “원상회복 어렵다” 까칠한 대응
“수십년 같이 산 아내를 자기 첩이라 우기면 참겠나”
이태식 대사, 美NSC 부보좌관 찾아가 심각성 설명
29일 분위기 반전… 부시 “콘디 장관과 잘 협의하라”
미국 행정부가 지명위원회(BGN)의 독도 영유권 표기 변경을 전격적으로 원상회복시킨 것은 매우 이례적인 조치가 아닐 수 없다. 서구 사회에선 매뉴얼과 기술적 판단에 근거해 이뤄진 전문가 집단의 결정을 정무적 판단으로 하루아침에 뒤집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사실 지난달 28일(현지 시간)까지만 해도 워싱턴에선 원상회복이 어렵다는 의견이 많았다.
BGN이 25일 오전 영유권 표기를 변경한 사실을 뒤늦게 파악해 서울에서 주미대사 문책론이 비등하던 시점인 28일 오전 주미 한국대사관은 외교력을 총동원해 국무부와 BGN 등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미국 측 반응은 매우 ‘까칠’했다. BGN의 랜들 플린 해외지명 담당 사무총장은 “(원상회복은)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반전의 실마리는 이날 오후 백악관에서 나왔다.
제임스 제프리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을 찾아간 이태식 주미 한국대사는 의례적 인사말도 생략한 채 곧바로 상황의 심각성을 설명했다. 이 대사가 일방적으로 설명했고, 제프리 부보좌관은 말을 끊지 않은 채 듣기만 했다.
이 대사는 “수십 년을 같이 산 아내를 다른 남자가 갑자기 나타나 자기 첩이라고 우긴다면 용납할 수 있겠느냐”며 “이렇게 민감한 한일 간의 문제를 왜 미국이 떠맡으려 나서느냐”고 설득했다.
제프리 부보좌관은 “나도 한국 사람이라면 그런 생각을 할 것 같다. 대통령에게 그대로 보고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사는 이어 국무부를 찾아갔다. 존 네그로폰테 부장관은 이 대사가 돌아간 뒤 동아시아태평양국과 정보조사국, 법률자문실 실무자들을 모두 불러 긴급 검토를 지시했다.
29일이 되자 분위기는 눈에 띄게 변했다.
이 대사는 유엔 지명전문가회의(UNGEGN) 산하 지명평가 워킹그룹 간사인 이기석 서울대 교수 등과 함께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를 다시 찾아갔다.
힐 차관보는 국무부 내 지리 전문가들을 다 불러 모았다. 외부 접촉 허가를 받지 않았다며 한국 측의 면담 요청을 거절했던 전문가들이 성의 있게 토론에 응했다. 이들은 러시아령으로 명시된 쿠릴 열도와의 형평성 문제를 지적하는 한국 측 논리의 타당성을 인정했다.
한국 측은 또 이전엔 웹사이트에 ‘독도’가 먼저 떴는데 ‘다케시마’ 등 일본 명칭이 먼저 나오게 된 이유를 따져 물었다.
미국 전문가들은 “종이 카드에 써 있는 걸 전산화 작업하는데 입력 오류가 엄청 많다. 독도 항목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 만들어진 종이를 보고 입력했는데 거기엔 다케시마가 먼저 써 있었다”고 해명했다.
비슷한 시간, 미 행정부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들은 본보의 문의에 “곧 원상회복될 것”이라며 급반전된 분위기를 전해 줬다.
이날 오후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의 모임에 참석한 이 대사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잠시 회의장에 들러 연설을 마친 뒤 나가자 복도로 따라 나갔다.
이 대사가 “의전상 맞지 않는 줄 알지만 급한 문제여서 말씀드리고 싶다”고 말을 건네자, 부시 대통령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잘 알고 있다. 지리적인 문제지요?”라는 반응을 보였다.
부시 대통령은 “콘디(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에게 문제를 들여다보라고 지시했으니 국무부와 잘 협의하라”고 말했다. 그리곤 “당신의 행동이 의전에 맞지 않는 게 아니니 걱정 말라”고 안심시켰다.
30일 오후 2시 반 제프리 부보좌관이 이 대사에게 전화를 걸어 원상회복을 알려줬다.
힐 차관보는 한국 의원들에게 “오늘은 대한민국 외교가 승리한 날”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 ![]() |
■ ‘원상회복 숨은 공신’ 로이스 美 하원의원
“美 지명위, 사전 조율없이 행동
자칫했으면 동맹 손상시킬 뻔”
대표적인 미국 내 지한파 인사인 에드 로이스(공화·캘리포니아·사진) 하원의원은 지난달 30일 “이번 독도 파문은 미국 정부 내 기관 간에 충분한 사전 조율 없이 이뤄지는 행동이 자칫 동맹을 손상시킬 수도 있다는 교훈을 준 사례”라고 말했다.
그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독도 표기(리앙쿠르 록스) 원상회복 지시를 내린 직후 하원 레이번 빌딩 집무실에서 가진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신속히 정정이 이뤄진 것은 정말 다행이며 오늘 미국 행정부가 취한 조치로 한국인들의 근심이 풀렸으면 한다”고 말했다.
앞서 로이스 의원은 코리아 코커스·한미의원연맹 공동의장인 다이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