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실질 권한을 약화시키는 내용을 담은 국회법 개정안을 국회의장의 본회의 직권 상정으로 처리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야당에 법사위원장 자리를 주는 대신 ‘안전장치’를 마련해 놓으려는 의도다.
여권의 한 고위관계자는 3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막혀 있는 원 구성 협상을 풀기 위해서는 일단 법사위원장직을 민주당에 넘기는 수밖에 없다”며 “그래서 원 구성을 마친 뒤 김형오 국회의장이 국회법 개정안을 직권 상정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밝혔다.
법사위와 관련된 국회법 개정안은 한나라당이 법사위원장을 야당에 넘겨주는 대신 모든 법안의 게이트키핑 역할을 하는 법사위의 강력한 권한을 제어하기 위해 고안해 낸 해법이다. 법사위에 올라오는 법안을 무조건 1개월 내에 법사위에 상정하고, 상정 3개월 내에 심의를 끝내고 본회의에 넘겨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 관계자는 “김 의장은 한나라당의 ‘선 원 구성, 후 국회법 개정안 직권 상정’ 요청에 대해 ‘협상에 임하는 민주당 원내 지도부의 처지를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이해했으며 김 의장의 이런 생각은 민주당에도 전달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당초 한나라당은 민주당에 ‘원 구성 후 법사위 기능을 조정하는 개정안을 절차에 따라 논의한다’는 내용을 원 구성 합의에 포함시켜 줄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민주당이 이를 거부함에 따라 본회의 직권 상정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핵심 관계자는 “국회의장의 직권 상정은 큰 정치적 논란을 부를 수 있는 만큼 결단이 필요한 사안”이라며 “김 의장은 무슨 일이 있어도 9월 정기국회는 제대로 열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 일단 ‘선 원 구성, 후 직권 상정’에 공감한 것으로 들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김 의장을 만난 자리에서 “법사위원장을 민주당에 넘겨줄 경우 경제 살리기 및 규제개혁 정책 추진에 큰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고 한다.
이에 김 의장은 지난 17대 국회 상황을 감안할 때 “법사위원장직을 야당에 주지 않으면 원 구성이 어렵고 국회가 열리지 못한다”며 “법사위원장 문제는 원 구성을 마친 뒤 새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 의장이 국회법 개정안을 직권 상정할 경우 적잖은 반발이 예상된다. 민주당이 법사위 권한을 실질적으로 약화시키는 이런 조치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에 김 의장 측 관계자는 “김 의장이 한 번 욕먹고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향후 4년간 살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당연히 그렇게 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종훈 기자 taylor5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