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제처 “가축법 행정권한 침해 위헌요소”

  • 입력 2008년 8월 22일 03시 00분


21일 국회에서 열린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 특별위원회 회의가 끝난 뒤 최인기 위원장(왼쪽)과 장태평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악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1일 국회에서 열린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 특별위원회 회의가 끝난 뒤 최인기 위원장(왼쪽)과 장태평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악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치권 “동의 아닌 심의 수준… 문제 없다”

■ 가축법개정안 법리 공방

행정부와 입법부가 19일 국회 원 구성 협상 과정에서 여야가 합의한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안을 놓고 충돌하고 있다.

여야가 합의한 개정안 중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수입하거나 광우병 발병국으로부터 쇠고기 수입을 재개할 때 국회 심의를 받도록 한다’는 조항에 대해 정부가 “3권 분립에 어긋나며 위헌적 요소가 있다”고 주장하자 여야가 “문제없다”며 맞서고 있는 것이다.

개정안은 21일 국회 가축법 개정 특위에서 원안대로 통과됐으며 26일 본회의에서 처리될 예정이다.

○ 공방의 핵심은 ‘국회 심의’ 조항

20일 농림수산식품부로부터 가축법 개정안의 위헌소지 검토를 요청받은 법제처는 21일 보도자료를 통해 “수입위생조건을 행정입법의 유형인 고시로 위임한 이상 고시의 제정과 개정은 행정부의 고유 권한”이라며 “국회가 심의라는 형식으로 고시를 통제하는 것은 헌법에 명시된 행정입법권과 3권 분립 원칙에 맞지 않다”고 밝혔다. 고시에 대한 국회 심의는 법 체계상 위헌 소지가 있으므로 이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수정해야 한다는 것.

법제처는 또 “수입위생조건을 가축법에서 고시로 위임하고 이를 다시 국회가 심의하는 것도 논리적으로 모순”이라며 “국회 심의는 예산안이나 법률안과 같이 체계 형식 자구 등 모든 것을 국회가 마음대로 고칠 수 있기 때문에 행정부의 권한과 자율성을 ‘동의’보다 훨씬 약화시키거나 상실시킬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석연 법제처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국회를 무시하겠다는 의도는 결코 아니며, 여야의 합의정신은 존중해야 한다”면서도 “헌법을 위반하는 정략적 합의는 존중받을 수 없으며, 위헌 소지가 있는 것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헌법전문가인 이 처장은 4일 국회 가축법특위에 참석해 위생조건에 대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는 것은 명백히 위헌 소지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21일 가축법 개정 특위에 참석한 장태평 농림수산식품부 장관도 “가축법이 개정돼야 한다는 현실적 필요에는 동감하지만 국제법과 조화돼야 하며 기존 수입위생조건과 상충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 여야, 한목소리로 위헌 주장 반박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는 이날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국회 심의와 표결 결과가 정치적으로는 의미가 있겠지만 정부의 결정을 법적으로 구속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위헌이라는 것은 난센스”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수입할 때 정치권의 동의 없이 정부 재량만으로 하기는 어려우니 심의를 통해 국민적 갈등을 해소하는 장을 마련하는 것이 정부를 도와주는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서갑원 수석 원내부대표는 “가축법 개정 협상 과정에서 위헌 소지를 없애기 위해 국회 통제권의 수준을 동의가 아닌 심의로 조정하는 등 정부가 거론한 사안은 이미 여야의 충분한 논의를 통해 극복됐다”며 “잘못된 쇠고기 협상으로 온 국민을 분노하게 했던 정부가 헌법과 국제법을 운운하는 것은 가당치 않다”고 말했다.

선진과 창조의 모임의 박선영 의원은 “행정입법권은 법률에서 범위와 한계를 정해 위임하는 것이지 백지위임하는 것이 아니므로 국회 심의는 위헌 소지가 없다”고 반박했다.

○ 청와대, 거부권 행사 안할 듯

청와대는 가축법 개정안이 위헌 소지가 있다는 법제처의 의견에 타당한 부분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개정안의 국회통과 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개정안에 위헌 소지가 있다면 국회 심의 과정에서 그런 점을 감안하지 않겠느냐”며 “어렵사리 국회에서 정치적 타결을 본 것에 대해 거부권까지 행사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또 다른 관계자는 “가축법 개정안에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이를 계기로 여야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내용을 인정하고 비준안 처리를 위한 공감대를 형성한 만큼 대통령 거부권 행사는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이종훈 기자 taylor55@donga.com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 영상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박경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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