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국민은 투자 부진, 일자리 부족, 과중한 세금, 금융 불안, 구매력 저하, 물가 앙등, 소비 위축, 자영업 줄도산에 시달리고 있다. 그 와중에 민생고(民生苦)가 나날이 심해지면서 생존 자체를 위협받는 국민이 늘고 있다.
이런 경제 위국(危局)에서 벗어나려면 모든 경제사회 주체가 힘을 모으고, 특히 정부가 똑바로 잘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옳고 급한 정책도 국회가 제때 법을 만들거나 고쳐줘야 궤도에 오를 수 있다.
민주당이 국회법에 따라 18대 국회 개원시한(6월 5일)을 지키고, 역시 법대로 6월 8일까지 상임위를 구성하는 데 협조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런 뒤 임시국회를 속행하며 정부가 내놓은 서민대책, 규제완화책, 투자촉진책의 상당부분을 법 제정과 개폐(改廢)로 뒷받침했다고 치자. 기업, 시장, 민생에 지금보다는 활기가 훨씬 더 돌았을 것이다.
정 대표는 한때 대기업 상무까지 지냈다. 그리고 원 원내대표는 기업 창업 경험이 있는 데다 민선 부천시장(市長)을 5년 반 연임한 행정가 출신이다. 민주당이 국회에서 건설적 생산적 역할을 한다면 민생 개선에 도움이 될 것임을 두 사람은 잘 알고 있을 터이다.
첫 단추 잘못 끼운 가축법 소동
그럼에도 민주당은 거의 허구로 드러난 수입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을 근거로 가축법 개정을 18대 국회 첫 과업인양 내세우며 국회 정상화를 석 달 가까이 지연시켰다. 이는 소수야당으로 전락한 민주당이 ‘이명박 정권 쓰러뜨리기’를 자신들의 생존법으로 삼은 결과다. 하지만 민주당은 본연의 국회 활동 직무유기를 통해 결국 민생 위기를 확산시키는 잘못을 저질렀다. 그리고 정치적으로는 대의(代議)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증폭시키는 자해(自害)까지 했다.
‘좋은 법을 제때 잘 만들어’ 국리민복(國利民福)에 기여하는 것이 국회의 소임이다. 정당들은 그 구성원이다. 국민은 국회와 정당들의 바른 입법을 기대하며 많은 세금을 낸다. 그런데 가축법 개정은 위헌 소지가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불요불급(不要不急)할 뿐 아니라, 국제기준과 충돌하며, 법적 안정성과 구체적 타당성을 다 놓치고 있다.
요컨대 가축법 개정은 국민에게 실질적 이익은 주지 못하면서 법 유지비용만 키울 개악(改惡)이다. 민주당은 ‘광우병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일종의 미신(迷信)을 만들어내 법 개정에 배수진을 쳤고, 한나라당은 국회 가동을 위해 마지못해 타협했다. 이는 한국 정치의 후진성을 거듭 확인시킨 장면이다.
민주당은 사실상 전신인 열린우리당의 실패에서 아직도 배우지 못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17대 국회의 다수여당으로서 이른바 ‘탄돌이’ 386세력 주도 아래 무리한 코드입법을 강행하느라 국력을 낭비했다. 과거사법과 신문법 제정, 사립학교법 개정이 대표적이다. 열린우리당은 실익도 없이 ‘억지 입법’으로 국론만 분열시켰다. 결국 사학법은 재개정됐으며 신문법은 폐기 또는 전면개정이 불가피하다.
열린우리당은 숱한 법률을 제정·개폐하면서도 경제건, 교육이건 민간의 자유(自由)와 자율(自律)을 신장하고 촉진하는 데는 극히 인색했다. 거꾸로 규제와 통제를 덧입혀 경쟁과 창의와 효율을 억눌렀다. 노무현 정권은 투자 활성화를 입버릇처럼 외치면서도 대기업들이 규제완화 1순위로 꼽았던 ‘출자총액 제한제도’의 폐지입법은 끝내 거부했다.
코드立法에 매달려선 성공 못해
노 정부가 제출하고 열린우리당이 적극 밀어붙여 제정한 비정규직보호법은 그럴듯한 명분에도 불구하고 후유증이 오히려 크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부담을 느낀 기업들이 비정규직을 해고하거나 채용을 꺼려 ‘서민 고용을 보장한다’는 법 취지와는 달리 오히려 일자리가 줄고 있다.
열린우리당이 경제원리와 시장심리에 순응하는 민생경제 활성화 입법에 매진했더라면 4년도 채 안돼 간판을 내리는 불운은 면했을 것이다. 그리고 정권 재창출에 성공할 기회도 있었을지 모른다. 오늘의 민주당이 열린우리당 코드로 회귀하는 것은 국민을 위해서나 민주당 사람들의 장래를 위해서나 현명한 선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좌고우면하는 한나라당도 열린우리당의 실패에서 배우는 바가 있어야 할 것이다.
배인준 논설주간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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