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반대” 소리만 나와도 “없던일로”

  • 입력 2008년 8월 26일 02시 56분


‘상수도 민간위탁’ 시민단체 반발로 하루만에 취소

법인세 인하 - 가스요금 현실화도 슬그머니 후퇴

정부와 한나라당이 ‘경제 살리기’와 공공 부문 부실을 도려내기 위해 추진했던 정책들이 잇달아 무산되고 있다.

반면 선심성 정책으로 분류될 수 있는 과제들은 무리를 해서라도 실행하고 있어 지나치게 눈치를 보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은 25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당사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전날 발표된 지방자치단체의 상수도사업 민간 위탁 방안을 전면 백지화하기로 했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전기 가스 수도 건강보험은 민영화는 물론 민간 위탁도 하지 않기로 당 지도부가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임태희 정책위의장 등은 24일 사업의 소유권은 지금처럼 지자체가 갖되 운영과 관리만 민간에 맡기는 방안을 뼈대로 하는 ‘상하수도 서비스 개선 및 경쟁력 강화를 위한 법률’을 다음 달 입법 예고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부 시민단체들이 “민영화를 위한 수순”이라며 반발하자 당 지도부가 정책위에 “정무 감각이 너무 떨어진다”고 질책하며 철회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책위로서는 각 지자체가 상수도에서만 매년 5000억 원가량의 적자를 보고 있어 이를 줄이기 위한 방편으로 내놓은 정책이었지만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이유로 계획 자체가 무산된 것이다.

한나라당은 최근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방안도 “대기업에 특혜를 준다”는 비판이 나오자 실시 시기를 1년 늦추기로 했다.

공기업 개혁도 야당과 노조, 시민단체가 반발하자 “경영합리화를 유도하겠다”며 흐지부지됐고 가스료 현실화는 당초 연내 30%까지 올리기로 했다가 10% 인상하는 선에서 그쳤다.

가스료 현실화는 유가 상승으로 한국가스공사의 누적 적자가 커지고 있어 추가 재정 투입이 예상되는 데다 지금처럼 낮은 가격을 유지하면 소비가 줄지 않기 때문에 다소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번에 결단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당내 일각과 야권에서 ‘민생 문제’를 들고 나오자 인상폭을 축소했다.

이처럼 반대 여론이 있는 정책들은 후순위로 미뤄지거나 철회되는 반면 유류보조금처럼 국민에게 직접적인 수혜를 주는 방안은 적용 시기를 소급해서라도 도입하겠다는 방침이어서 정책의 형평성과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또 지방 미분양 아파트를 공공기관을 통해 사주기로 하는 등 시장원리와 배치되는 정책도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 “당 지도부가 촛불시위 이후 여론을 너무 의식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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