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철저한 검증’ 원칙 고수… 상황 더 심각”
■ 핵불능화 중단 파장
북한과 미국이 핵 검증을 놓고 물러설 수 없는 기 싸움에 돌입했다.
토니 프래토 미 백악관 부대변인은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중단했다는 것을 입증하기 전까지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고 로이터통신이 27일(한국 시간) 보도했다.
전날 “핵 신고서를 제출했음에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지 않는 것은 합의 위반”이라고 미국을 맹비난한 북한 외무성 대변인 성명에 대한 반박이자 핵 신고와 검증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기존 태도를 거듭 확인한 것이다.
북-미 간 검증 협의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시료 채취다. 실제 북한의 핵 불능화 중단 선언이 나온 뒤 미 의회가 출자한 자유아시아방송(RFA)은 “미국이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를 영변 핵시설에 대한 시료(샘플) 채취와 연계하고 있다”고 워싱턴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보도하기도 했다.
시료 채취는 1994년 ‘1차 핵 위기’를 일으킨 원인이기도 하다. 당시 북한은 미신고 시설 두 곳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거부했다. 전문가들은 시료를 채취해 반감기를 분석하면 마치 나무의 나이테를 보고 수령(樹齡)을 알 수 있듯이 북한이 플루토늄을 얼마나 생산했는지를 정확히 알아낼 수 있고 고농축우라늄(HEU) 문제도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요컨대 북한은 신고를 했으니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해야 한다는 주장이고 미국은 검증체계가 마련되지 않는 한 명단 삭제는 불가하다는 태도로 바로 이 대목에서 북-미가 물러설 수 없는 대결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놓고 외교가에서는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 사태’를 떠올리는 이들도 있다. 2005년 9월 북핵 4차 회담 이후 미국은 북한이 위폐 제조 등 불법 활동을 했다며 마카오의 BDA 은행에 대한 금융제재를 실시했고 북한은 강하게 반발했다. 북한은 2006년 7월 미사일 발사에 이어 같은 해 10월에는 핵실험까지 강행했으며 북핵 6자회담은 2007년 2월까지 중단됐다. 북핵 협상은 BDA의 북한 계좌에 대한 동결 조치가 해제되면서 간신히 제 궤도로 복귀할 수 있었다.
한 외교소식통은 “현재 상황은 BDA 때보다 훨씬 어렵다”고 했다. 당시엔 ‘핵 신고’만이 목표였던 만큼 미국이 상당 부분 양보할 수 있었지만 현재는 검증 단계라는 것. 미국이 아무리 정권 교체기라고 하더라도 ‘물 탄 검증’에 합의하고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할 경우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외교 성과는 물거품처럼 사라질 수 있다. 이 소식통은 “부시 행정부가 그간 북핵 문제와 관련해 미국 안팎의 비난을 막아내며 ‘철저한 검증’ 카드를 관철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미국의 양보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이렇게 양측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의 역할을 기대하는 시각도 있다. 중국은 과거 BDA나 핵 신고서 제출 문제 등을 놓고 6자회담이 삐걱댈 때마다 북-미 사이에서 적극적인 중재 역할을 했다. 더구나 이명박 정부는 대북 채널도 없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는 “북한의 반발은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북핵 2단계 조치 이행을 촉진시키겠다’고 밝힌 것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기 때문에 중국의 역할을 낙관할 수만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