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정화 씨가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공작원으로 포섭되는 과정은 2003년 1월 한국으로 귀순한 전직 보위부 첩보원 이춘길(38) 씨의 증언에서 나온 사례와 비슷하다.
1997년 당시 중국을 오가며 장사를 하던 이 씨는 돈을 받기로 하고 북한 고위간부 일가족 3명을 탈북시킨 혐의로 보위부에 체포됐다. 이 씨는 감옥에서 유리조각으로 자살을 기도했다. 그런데 그의 ‘배포’를 높이 산 보위부는 그를 첩보원으로 포섭해 중국으로 파견했다.
이 씨는 이때부터 중국에서 본격 활동하면서 북한에 반대하는 탈북자 단체 조직원들과 북송됐다가 탈북한 일본인 여성 등을 납치해 북한에 보내기 시작했다. 그는 또 중국에서 활동했던 한국 국가정보원 요원 납치공작에도 가담했다고 증언했다. 이런 활약으로 그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서 친필 편지도 받았다.
이 씨의 증언에서 주목되는 점은 “보위부가 여성 첩자를 중국동포에게 시집보내 중국에서 합법적으로 활동하게 한다”는 대목. 이 씨는 자신의 연락책이었던 김모 여인도 이런 사례라고 진술했다.
점차 중국에서의 자신의 활동에 불만을 가지기 시작한 이 씨는 2003년 귀순 후에 “1999년에 주중 한국영사관에 귀순 의사를 밝힌 뒤 ‘북한이 한국인 김동식 목사를 납치하려 한다’는 정보도 넘겼으나 영사관 측에서 이를 무시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씨의 구체적인 증언으로 김 목사 납치에 가담한 뒤 한국에 입국했던 중국동포들이 체포되기도 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