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켜다오 날자꾸나

  • 입력 2008년 8월 30일 02시 53분


공군 제20전투비행단 소속 조류퇴치팀(BAT) 대원들이 28일 낮 KF-16 전투기가 이륙하는 동안 활주로 인근에서 기지 상공으로 야생 조류들이 접근할 것에 대비해 감시활동을 하고 있다. 조류퇴치팀은 엽총 외에 휴대용 발사통으로 폭음탄을 쏘아올려 활주로 상공으로 근접하는 새 떼를 쫓아낸다(아래 사진). 사진 제공 공군
공군 제20전투비행단 소속 조류퇴치팀(BAT) 대원들이 28일 낮 KF-16 전투기가 이륙하는 동안 활주로 인근에서 기지 상공으로 야생 조류들이 접근할 것에 대비해 감시활동을 하고 있다. 조류퇴치팀은 엽총 외에 휴대용 발사통으로 폭음탄을 쏘아올려 활주로 상공으로 근접하는 새 떼를 쫓아낸다(아래 사진). 사진 제공 공군
“북쪽 방향 새떼 접근 전투기 이륙 대기하라”

비행중 충돌하면 참사 “펑” 폭음탄 쏘며 쫓아

《“1번 기 이륙 위치 잠시 대기, 북쪽 방향 새 떼 접근.” “알았다, 이륙 대기.” 28일 낮 충남 서산의 공군 제20전투비행단 내 활주로. 이륙 준비를 끝내고 엔진 시동을 건 KF-16 전투기 조종사에게 기다리라는 지상통제탑의 무선통신이 급히 날아들었다. 400억 원짜리 전투기의 발을 묶은 ‘훼방꾼’은 다름 아닌 기지 상공으로 접근하는 10여 마리의 야생 조류였다. 기지 곳곳에 설치된 폭음기를 가동하고 조류퇴치팀(BAT)이 출동했다. 이들이 폭음탄으로 새들을 쫓아버린 뒤에야 전투기는 무사히 이륙할 수 있었다.》

전투기 이착륙 때 활주로 상공으로 접근하는 새들은 ‘불청객’이자 ‘공포의 대상’이다. 몇백 g에 불과한 비둘기라도 기체와 충돌할 경우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3kg 남짓한 새 한 마리가 시속 350km로 이착륙하는 기체와 충돌하면 그 충격은 33t에 달한다, 실제로 2003년 F-5E 전투기 1대가 이륙 중 조류 충돌(bird strike)로 추락해 조종사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1995년에는 미국 공군의 E-3C 조기경보기가 조류 충돌로 추락해 승무원 20여 명이 모두 숨지는 참사도 있었다.

30년 넘게 조류 생태를 연구한 20전투비행단 조류 담당 현동선(53) 준위는 “저고도로 긴급 발진하는 전투기에 새 떼는 ‘날아다니는 흉기’ ‘살아있는 미사일’로 불릴 만큼 위협적”이라고 말했다. 현 준위는 “세계적인 철새 도래지인 천수만이 바로 인접해 조류 퇴치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110여 종 30만 마리의 철새가 천수만으로 날아드는 매년 9월∼다음 해 3월이 가장 위험하다. 적게는 수백 마리, 많게는 수만 마리의 새 떼가 언제 어디서 기지 상공으로 날아들지 몰라 조류퇴치팀을 비롯해 부대 전체가 초긴장 상태가 된다.

부사관과 병사들로 구성된 조류퇴치팀은 폭염과 혹한에도 하루 15시간씩 활주로 주위를 순찰하며 엽총과 휴대용 발사통으로 폭음탄을 쏴 새들을 쫓는다.

새들이 활주로까지 침범할 경우 실탄도 쏘지만 천연기념물이 다수 포함된 야생 조류에 대한 포살(砲殺)은 가급적 자제한다. 활주로 주변에 설치된 30여 대의 자동폭음기는 2분마다 ‘쾅’ 하는 폭음과 새들이 싫어하는 맹금류 소리를 번갈아 내질러 새들의 접근을 막는다. 기지로 접근하는 대형 조류나 대규모 새 떼를 다른 방향으로 쫓아버릴 때는 무선조종 비행체(RC-MAT)를 사용하기도 한다. 또 기지 울타리 주변에 설치된 1억3000만 원짜리 적외선 카메라는 야간비행을 하는 전투기의 이착륙 경로에 새들이 침범하면 ‘조류주의경보’를 발령해 사고를 예방한다.

국내에선 해마다 평균 30여 건의 조류충돌 사고가 일어나는데 이 중 조종사가 사망한 추락사고는 1973년과 1978년, 2003년 등 3차례로 모두 전투기였다. 충돌이 잦은 조류는 멧비둘기, 청둥오리, 참새, 흰뺨검둥오리, 꿩, 까치 순이다.

하지만 아무리 신형 장비를 설치해도 새들은 처음엔 움찔하다 며칠 만에 적응해 퇴치 효과가 지속되기는 힘들다고 현 준위는 설명했다.

특히 성격이 사납고 사람까지 공격하는 때까치는 활주로에 떨어진 식물의 씨앗을 먹기 위해 수시로 기지에 침입하고, 맹금류는 무선조종 비행체도 겁내지 않는다고 한다.

새들을 퇴치장비로 쫓아버리는 것보다 기지로 조류를 유혹하는 원인을 사전에 없애는 활동이 더 중요하다고 부대 측은 설명했다.

가령 활주로 인근 지역의 수풀이나 잡목 등을 수시로 제거해 새들이 둥지를 만들거나 먹이를 찾기 위해 앉을 만한 장소를 없애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활주로 근처의 잔디에 살충제를 뿌려 새들의 먹이인 곤충을 없애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수풀이 우거지고 곤충이 많은 격납고 주변에선 간혹 딱새 등이 전투기 내부에 둥지를 틀기도 하는데 정비사들은 새들이 싫어하는 기름을 발라 쫓아내기도 한다.

현 준위는 “과거 무조건 총을 쏴 새를 잡던 퇴치에서 지금은 새와 공존하기 위한 환경친화적인 퇴치에 역점을 두고 있다”며 “새들의 생활을 지켜주고 우리도 안전하게 비행할 수 있는 지혜를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산=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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