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권순택]국정원의 新안보

  • 입력 2008년 9월 6일 02시 58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수술대에 오른 대표적인 조직이 국가 최고 정보기관이다. 1961년 6월 ‘무소불위’의 중앙정보부로 출발한 이 기관은 1981년 1월 국가안전기획부, 1999년 1월 현재의 국가정보원으로 간판을 바꿔 달고 개혁을 외쳤다. 하지만 대개는 말뿐이었다. 권위주의 정권에선 정치사찰과 인권탄압에 앞장섰고, 좌파정권에서는 ‘간첩 잡는 기관’으로서의 본업은 제쳐놓고 ‘햇볕정책 지원조직’으로 전락했다.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 때는 정보기관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했다고 해서 ‘골다공증 환자’라는 말까지 들었다.

▷김대중(DJ) 정권에서 국정원장을 지낸 임동원 신건 씨는 정권이 바뀐 뒤 불법 도·감청 사건으로 구속돼 유죄 판결을 받았다. 노무현 정부 때는 국정원이 야당 대선 주자였던 이명박 대통령의 부동산 자료를 열람해 정치사찰 의혹을 받았다. 당시 김만복 원장은 대선 전날 노무현-김정일 남북 정상회담 기념 표지석을 전달하러 몰래 평양에 다녀온 뒤 북한 통일전선부장과의 대화록을 언론에 흘린 상식 밖의 처신으로 끝내 물러났다.

▷국정원은 요즘 직무 범위를 확대하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휴대전화를 감청할 수 있도록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직무 범위에 산업기술 경제 환경 에너지 등 이른바 ‘신(新)안보’ 분야도 추가할 방침이다. 현행 국정원법 제3조는 국정원 직무를 국내 보안정보 수집, 국가기밀 보안업무, 내란과 외환 죄 및 반란 죄 수사 등으로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일부 언론이 ‘권부의 부활 모색’이라고 비판하자 국정원은 어제 왜곡이라고 반박했다. 통신비밀보호법 개정도 감청 허가기관(법원) 집행기관(수사기관) 협조기관(통신업체)의 역할과 법원의 허가 요건을 명확히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외국 정보기관들도 국익을 위해 경제정보 수집활동을 하고 있는 만큼 ‘신안보’ 분야를 업무에 추가하는 것을 문제 삼기는 어렵다. 하지만 휴대전화 감청은 합법적이라고 해도 오·남용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방지책을 단단히 세워 국민이 믿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역대 정권의 국정원 개혁 실패는 한결같이 언행(言行) 불일치 때문이었음을 명심해야 한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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